헌법기관 위의 文대통령 “前정부 재판거래 의혹, 사법부 신뢰 흔들어”

입력 2018.09.13 11:48 | 수정 2018.09.13 15:42

"의혹 반드시 규명되어야...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사법부의 민주화라는 대개혁을 이루어낼 것"
헌법재판소에 이어 두번째...헌법기관마다 구체적 방향 제시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흔들고 있다면서 사법부의 민주화라는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이같은 주장은 확정되지 않은 의혹을 근거로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사법부에게 매우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중앙홀에서 열린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법원의 날’을 맞아 서초구 대법원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기념사를 통해 "지금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매우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지난 정부 시절의 ‘사법농단’과 ‘재판거래’ 의혹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사법부가 겪어보지 못했던 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하며, 만약 잘못이 있었다면 사법부 스스로 바로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날 법원 내부의 용기가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왔듯이, 이번에도 사법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라며 "그리고 나아가 사법부의 민주화라는 대개혁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사법발전위원회와 함께 국민의 뜻을 담아 사법제도 개혁을 이뤄낼 것이라 믿는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사법개혁이 흔들림 없이 추진되기를 바라는 국민의 뜻에 따라입법을 통해 사법개혁의 버팀목을 세워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700만개의 촛불이 헌법정신을 회복시켰고, 그렇게 회복된 헌법을 통해 국민주권을 지켜내고 있다"며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저를 포함한 공직자 모두는 국민이 다시 세운 법치주의의 토대 위에 서있다"고 했다.

이어 "저는 촛불정신을 받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며 "그 무게가 사법부와 입법부라고 다를 리 없다. 우리는 반드시 국민의 염원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도 했다.

◇헌법재판소에도 방향제시..."헌법기관들, 아직 국민 눈높이에는 부족"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지자 법조계에서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司法府)’가 장관을 책임자로 하는 행정각부 수준의 ‘사법부(司法部)’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왔다. 사법부는 헌법상 대통령과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조직인 헌법기관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4장에서 대통령과 행정부에 대해 규정하고, 제5장에서 법원, 제6장에서 헌법재판소를 규정하고 있다.

같은 헌법기관 중 하나인 문 대통령이 다른 헌법기관을 하대하는 듯한 발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도 "기본권과 국민주권 강화는 국민이 정부와 헌법기관에 부여한 시대적 사명"이라며 "우리 정부와 헌법기관들이 국민이 부여한 사명을 제대로 수행해왔는지, 헌법정신을 잊거나 외면할 때가 있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헌법은 완전무결하거나 영원하지 않다. 헌법에 대한 해석 역시 고정불변이거나 무오류일 수는 없다"며 "시대정신과 국민들의 헌법의식에 따라 헌법해석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변할 수 없는 원칙도 있다. 민주주의의 완성과 인간의 존엄을 향한 국민의 뜻과 염원은 결코 바뀔 수 없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가 이 원칙에 굳건히 뿌리내릴수록 헌법을 포함해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진성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이낙연 국무총리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헌법기관들이 이제는 상당한 역사와 연륜, 경험을 축적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 눈높이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도 했다.

◇文대통령 ‘사법부 민주화’ 제시...사법부 정치화 우려도

한편, 문 대통령이 이날 연설에서 제기한 ‘사법부의 민주화’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사법부는 선거를 통해 구성원과 책임자를 뽑는 국회,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등과 구성 및 운영 원리가 달라서 ‘민주화’라는 표현이 다소 어색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선거가 아닌 시험 또는 임명의 방식으로 구성한다. 국회는 선거를 통해 구성하지만, 법관은 선거가 아닌 시험 등을 통해 뽑는다. 행정부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선거로 뽑지만, 사법부 조직의 책임자격인 대법관, 대법원장 등은 대통령의 추천과 국회의 동의 과정을 통해 임명된다. 운영 방식도 다수의 의견이 중요한 국회 등과 거리가 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법부에서 다수의 의견이 강조될 경우에는 재판이 정치화되거나 소수자 관련 판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0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판사들이 법원장을 직접 뽑는 법원장 호선(互選)제 안건이 무산되기도 했다. 호선제 반대측에서는 선출 경쟁에 따른 법원의 정치화, 인기에 영합하는 사법행정 등을 우려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사법부 민주화’의 구체적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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