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남성들 '성추행 포비아'… 전철 붐비면 손 둘곳을 모르겠어요

조선일보
입력 2018.09.13 03:01

성범죄 처벌·단속 엄격해지면서 일부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법원서도 "증거 부족" 무죄 선고

서울 지하철 강제 추행 적발 건수 그래프
/일러스트=김현지

최종찬씨는 2016년 3월 23일 오후 6시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퇴근하고 있었다. 최씨는 휴대폰으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관련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서울지방경찰청 지하철수사대 소속 경찰관 둘이 최씨 팔을 붙들었다. "밀집 지역 추행 혐의로 체포하겠다"고 했다. "(최씨가) 성기를 여성 승객의 엉덩이에 대는 모습을 목격해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것이다. 여성 승객은 모르고 있었다. 경찰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녀는 "듣고 보니 (성추행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2017년 6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데 이어 지난 1월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씨가 성기를 피해자 엉덩이에 댔다"고 주장하던 경찰은 법정에서 "열차가 출발할 때 닿지 않았을까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현장에서 찍었다던 동영상은 "1분 분량을 찍었지만 지웠다"고 했다.

최씨는 주변에 말도 못하고 재판을 준비해야 했다. 사건 이후 그는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지하철보다 30분 더 걸리지만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있다. 최씨는 "정신적 피해가 커서 무고(誣告)로 경찰관을 고소하려 했지만, 변호사가 공무집행상 일어난 일이라 어렵다고 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성범죄 사건에 대해 무관용 원칙이 적용되는 가운데 '공공장소 성추행 포비아(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의도치 않은 접촉으로 성추행범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혼잡한 식당에서 남편이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이 있으면 세부 사실관계가 틀려도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원 입장이다. 서울 변호사협회 허윤 변호사는 "피해자 증언 이외에 증거가 없는 사건의 경우 경찰이나 검찰이 사건의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 글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됐고 청와대 게시판에서 이틀 만에 20만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일부 남성은 8일 무고 피해자 양산을 막겠다는 취지의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다. 12일 회원 수가 1000명이 넘었다. 일부 남성은 "지하철을 타면 손을 무릎 위에 올려 잘 보이게 한다" "몰래카메라 촬영범으로 몰릴 수 있으니 휴대폰은 꺼내지 않는다"는 등의 행동 요령을 공유하기도 한다. 늘어나는 성범죄가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지난해 경찰이 서울 지하철에서 총 1094건의 성추행을 적발했다. 2015년(779건), 2016년(791건)에 비해 30% 가까이 늘었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벌였고, 참고 넘어가던 여성 피해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한몫했다.

대다수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남성은 경찰에 의해 성희롱범으로 체포됐다가 재판 과정에서 무죄로 밝혀지기도 한다. 작년 8월 박모(46)씨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안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피해자 김모(32)씨는 법정에서 "추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박씨의 편을 들었다. 김씨는 "경찰이 먼저 영상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밀착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경찰이 먼저 '박씨는 전과가 많아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법원이 확인한 기록에 따르면 박씨는 성추행 전과가 없었다.

일본도 10여 년 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07년 지하철 안에서 한 남성이 성추행 혐의로 체포돼 실형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크게 흥행했다. 일본은 지하철 내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해 지난해 모든 도쿄 지하철에 방범카메라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9월 현재 서울 내 지하철 방범카메라 설치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스웨덴처럼 진술 평가 전문가들이 수사 초기 단계부터 피해자의 진술과 반응을 비교하며 신뢰도를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증거가 부족한 성범죄의 특성상 진술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취지다. 부장판사를 지낸 윤경 변호사는 "무고를 당한 개인이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기가 어려운 만큼, 체포나 진술 확보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범죄는 일단 가해자로 지목되면 직장, 가족 관계까지 위기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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