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네 집주인 고길동, 알고 보니…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9.13 03:01

    '아기공룡 둘리' 35주년 맞아 11월 11일까지 '안녕 고길동' 展

    고길동
    "고길동을 이해하게 됐을 때, 당신은 어른이 된 것이다."

    이 생각이 왕년의 만화 팬들 사이 막강한 공감을 얻으며 전시로 구현됐다. '아기공룡 둘리' 탄생 35주년을 맞는 올해 서울 둘리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안녕 고길동' 전〈사진〉. 만화 주인공 둘리가 아닌, 둘리를 걷어 키우는 집주인 고길동의 생애를 조명한다. 1983년부터 10년간 연재된 만화잡지 '보물섬' 130권을 정리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은주(33) 학예사는 "어릴 땐 둘리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 같았지만 팩트를 보면 고길동은 결코 악역일 수 없다"고 말했다.

    1951년생(당시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서울 광화문 소재 중소기업 과장 고길동은 여러 식구를 먹여 살리면서도 피 한 방울 안 섞인 엽기 생명체(둘리·도우너 등)를 기꺼이 받아주고, 그들의 갖은 만행으로 인한 손실을 묵묵히 감내한다. 다래끼를 옮기고, 현관문을 박살 내는 등 둘리가 저지른 100여 가지 악행이 전시장 벽면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데, 이걸 다 읽고 나면 고길동이 성자(聖者)처럼 느껴진다.

    고길동의 생애 통계도 자세하다. 재산은 쌍문동 집 한 채가 전부인데, 주택 융자 5000만원, 사채 2000만원, 생계보조금 1000만원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나는 왜 행복하면 안 되는 걸까?" 분통 터트리는 고길동의 모습도 담겼다. 고지식하고 때로 안쓰럽지만 그래서 그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 아저씨'가 된다. 혼자 TV를 보거나, 신문을 넘기는 고길동의 뒷모습이 곳곳에 가장(家長)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11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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