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재즈가수 나윤선을 발굴한 뮤지컬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9.13 03:01

    [공연 리뷰] 지하철 1호선

    1994년 초연 때 출연한 나윤선(오른쪽)과 설경구.
    1994년 초연 때 출연한 나윤선(오른쪽)과 설경구. /학전
    이 뮤지컬은 오래된 거울 같다. 지난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현재의 우리를 비춘다. 군데군데 얼룩이 있지만, 흉내 낼 수 없는 향기와 진실을 들추는 시선의 힘은 그대로다.

    한국 포크의 전설적 존재인 김민기(67)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1994년 초연 뒤 2008년까지 조금씩 내용을 바꾸며 4000회 공연된 작품. 원작인 독일 뮤지컬은 1986년 초연됐으며 동독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간 서독 여자 이야기였다. 김민기는 서울에 온 옌볜 처녀를 주인공으로 바꿔 당대의 한국을 녹였다.

    IMF 구제금융 사태를 맞은 1998년 서울의 새벽, 약혼자 '제비'를 찾아온 옌볜 처녀 '선녀'가 서울역에 내린다. 목적지는 제비가 산다는 '588 독립군 기념거리'다. 청량리로 가는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서울 사람들은 선녀를 약장수나 결혼 사기꾼 취급한다. 그녀를 돌아봐 주는 사람은 걸인, 노숙자, 가출 소녀, 집창촌 여성, 포장마차 욕쟁이 할매뿐.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돼 집창촌에 숨어들었다는 '안경', 그를 짝사랑하는 여인, 투기꾼 졸부 등 개성 있는 인물들이 선녀의 여정에 엮여든다.
    약혼자를 찾아 서울역에 내린 옌볜 처녀 선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청량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온갖 종류의 사람이 꼬여든다.
    약혼자를 찾아 서울역에 내린 옌볜 처녀 선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청량리를 찾아가는 여정에 온갖 종류의 사람이 꼬여든다. /학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려나 만듦새에 대한 좌고우면 없이 황소처럼 돌진한다. 소극장 공연도 기성품처럼 매끈한 요즘 대학로를 생각하면 낯설 만큼 거칠다. 그래서 더 신선하고 오히려 더 설득력 있다.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요즘이라면 처녀가 어리숙하게 속을 일도, 청량리 가는 길을 물어볼 일도 없을 것이다. 지하철 안 걸인과 깡패, 대낮 포장마차촌에 철거반원이 들이닥치는 풍경도 낯설 수 있다. 이 뮤지컬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질문을 끄집어 낸다. 세상이 편리해졌다고 진짜 달라졌느냐고, 그늘진 곳을 내팽개쳐 두는 시스템은 그대로 아니냐고 묻는다. 극은 경쾌하고 노래는 아름다우며 자주 폭소가 터지지만, 그 질문들은 여전히 서늘하고 묵직하다.

    공연 초반이라 아직 음향이 겉돌고, 신인 배우들의 연기 합도 서툴다. 85대1 경쟁을 거쳐 김민기가 직접 뽑은 배우들의 호흡은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단단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 배우들은 최선을 다하는 아이처럼 해맑아 보는 사람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지하철 1호선'은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 등 명배우를 낳은 스타 산실이었다. 초연 때 '얼떨결에' 오디션 보고 주연을 맡았던 나윤선은 지금 세계적 재즈 가수가 됐다. 공연은 12월 30일까지 딱 100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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