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30] 7800명 탈난 40년 전 '학교 급식빵 식중독'… 교육청 "업자 책임"… 뇌물 상납도 드러나

입력 2018.09.12 17:58

1977년 9월 17일 조선일보 1면엔 공교롭게도 한국인의 역사적 쾌거와 커다란 수치(羞恥)가 나란히 보도됐다. 고(故) 고상돈씨의 '에베레스트 정복'을 대서특필한 머리기사 옆엔 '서울시내 52개교 초등학생 7872명 집단 식중독'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실렸다. 이렇게 많은 어린이가 한꺼번에 식중독에 걸린 일은 국내에선 이 사건 외엔 찾기 어렵다.

점심시간에 학교에서 급식으로 받은 슈크림 빵이 문제였다. 빵을 먹은 아이들은 하교해 집에 있다가 오후 5시 전후부터 배를 잡고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학생들도 있었다. 국회는 "세계 최다 인원의 집단 식중독 아니냐"고 따졌다. 이 사고는 그해 연말 언론사들이 선정한 '1977년 10대 뉴스'에도 포함됐다.

1977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오전에 도착한 급식 빵을 교실로 나르는 모습.
1977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오전에 도착한 급식 빵을 교실로 나르는 모습. 당시 7800여명이 식중독에 걸렸다. 오른쪽은 식중독으로 쓰러져 입원한 어린이들(동아일보 1977년 9월 17일 자).
검찰 수사 결과, 빵 속 슈크림에서 포도상구균이 검출됐다. 아동 15만 명에게 빵을 공급하는 업체의 위생 실태는 경악할 만했다. 제빵 시설엔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 있었다. 계란과 우유가 들어간 슈크림 빵을 섭씨 25도의 상온에서 50시간 이상 놔뒀다가 화물트럭 짐칸에 실어 수송했다. 문교부와 시교육위원회의 위생 검사는 9개월간 단 두 번밖에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사고 이후 당국의 대응이었다. 시내 병원과 약국에 어린 환자들이 몰려들던 16일 저녁 서울시교육위원회 직원들은 퇴근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음 날 모든 신문·방송이 '7800명 식중독'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던 아침에도 교육감은 '초·중·고 교장부인회 주최 바자회'부터 갔다. 오전 10시 40분쯤 나타난 교육감은 "제빵업소의 지도 감독권은 보사부와 각 시·도 보건소에 있는데 괜히 교육위원회만 골탕을 먹는다"고 말했다(경향신문 1977년 9월 20일 자). 수사 결과, 문제의 식품 회사는 관계 공무원과 교사 등 200여 명에게 뇌물을 상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조선일보 사회면 만화 '야로씨'는 "썩은 건 빵이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일갈했다.

오늘날 이 정도의 사태라면 대통령이 나서야 하겠지만, 이 사건과 관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언급은 찾기 어렵다. 사건 초기 서울시교위 측은 "시교위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제빵업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했다(동아일보 1977년 9월 17일 자). 9월 19일 식중독으로 입원 중이던 열 살 어린이가 숨지자, 서울시교육감은 2일 뒤인 21일 물러났다. 10월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문교부·보사부 장관도 퇴진하라"고 요구했지만 꿈쩍도 안 했다. "이 엄청난 사고에 대해 책임자가 국민한테 한마디 사과도 없으니 무슨 뱃심이냐"는 질타에도 당국자들의 사과는 없었다.

1977년 크림빵 식중독 이후 41년 만에 일어난 이번 '급식 초코케이크 식중독'의 어린이 환자가 2200명을 넘어섰다. 급식 때 받은 빵·과자류를 먹고 수천 명이 탈 났다는 점에서 그때의 사고와 무척 닮았다. 식중독 경각심이 느슨해지기 쉽다는 9월에 일어난 것도 똑같다. 부패하기 쉬운 크림케이크 다루는 사람들의 수준이 40여 년간 제자리걸음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수치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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