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마윈 선생님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9.12 03:16

    1995년 어느 날 저녁 항저우 시내에서 불량배로 보이는 서너 명이 맨홀 뚜껑을 훔치고 있었다. 그 무렵 중국에선 뚜껑 없는 맨홀에 어린이들이 추락하는 사고가 빈발했다. 그러나 행인들은 뚜껑 절도 현장을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청년이 유일하게 "멈추라"고 소리쳤다. 불량배들이 위협했지만 더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항저우 TV 프로그램 '몰카'에 용감한 시민으로 등장한 청년이 항저우전자대 영어 강사 마윈(馬雲)이었다. 이를 계기로 마윈은 항저우시 통역이 됐고 미국에 출장 갔다가 인터넷을 처음 경험했다. 1999년 알리바바 창업의 씨앗이 그때 뿌려졌다.

    ▶중국 기자에게 마윈에 대해 물었더니 "영향력이 총리보다 클 것"이라고 했다. 돈·권력이 아니라 도전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중국에 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부에 인색한 중국 토양에 '마윈 재단'을 세운 뒤 "빌 게이츠와 자선 활동에서 경쟁하겠다"고 했다. 모교에 180억원을 기부했다. 중국 무술을 소재로 한 영화에 배우로 출연했고 유명 가수와 듀엣곡을 발표한 적도 있다. 현대 화가와 함께 그린 유화 작품은 54억원에 낙찰됐다. 중국 흙수저들의 우상이다. 

    [만물상] 마윈 선생님
    ▶보통 중국에서 부호가 되면 '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이라는 감투를 쓰고 공산당 찬양 발언을 쏟아낸다. 현재 중국 부자 중 마윈만 거의 유일하게 정협 위원이 아니다. 인터넷 약력에는 '공산당원'이란 말이 없다. 2015년 중국 당국이 "알리바바 유통 상품의 60%가 짝퉁"이라고 했을 때 알리바바는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공산당이 너무 커버린 마윈을 마뜩잖아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윈은 올 초 한 모임에서 군인 복장으로 무대에 올라 문화대혁명 시절 노래를 불렀다. 공산당 코드 맞추기였다.

    ▶그제 마윈이 "창업 20주년인 내년에 알리바바 회장에서 물러나 교육 사업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가 공개한 새 명함에는 '마윈 선생님(老師)'으로 적혀 있다. 그런데 대만 자유시보가 마윈 사퇴를 '비명횡사를 우려한 결단'이라고 전했다. 모종의 정치적 공격이나 소용돌이를 피하려는 고육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윈 은퇴 발표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CEO를 'Chief Education Officer(교육 담당 최고책임자)'로 해석하는 그의 지론대로 진짜 다시 선생님이 되겠다는 결단일 수도 있다. 아니면 공산당 황제 국가 부조리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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