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외식의 품격]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완벽한' 짜장면을 찾아서

  •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18.09.12 10:00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완전히 한국화된, 짜장면이라는 유니콘
    저렴하게 즐기는 서민 음식…흔하지만 완벽한 짜장면 찾긴 어려

    짜장면은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자, 만드는 이의 수고로움이 느껴지는 음식이기도 하다./연합뉴스 제공
    평양냉면 외에 비평적인 가치를 가진 한국 음식은 무엇인가. 지난 6월 ‘냉면의 품격’을 내고 받은 질문이다. 단박에 짜장면이 생각났다.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완전히 한국화되었고, 한식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되는 지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소하고 두툼한 맛이 특징이다. 답하는 가운데 머릿속에 한 그릇의 짜장면이 떠올랐다. 정확하게는 간짜장이다. 짜장면과 간짜장 사이에도 수많은 취향이 갈리는데 나는 후자 쪽이다. 면의 상태를 더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가격이 높아 터럭만큼이나마 더 신경 써서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개량제 넣지 않은 수타면, 따뜻하고 아삭한 양파… 5000원 가격에 무너져

    머릿속 간짜장의 주인공은 ‘용궁’이었다. 원효로, 즉 용산 전자상가 뒤쪽 거리 어딘가의 2층 건물에 있는 중국집으로 깔끔한 수타면이 매력이었다. 개량제를 쓰지 않는지 면이 하얗고 보들보들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짜장 4500원, 간짜장 5000원. 가격이 낮다 보니 주문에 맞춰 볶은 짜장에도 인상적인 맛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건더기라고는 그저 따뜻한 양파가 아삭거리는 가운데 질긴 두족류의 살-‘대왕오징어 어묵’이라 부르는-이 몇 조각 들어 있을 뿐이었다. 정직하지만 빈약한 짜장 탓에 아름다운 면의 빛이 죽는 듯한 느낌을 언제나 받았다.

    하지만 음식점을 탓할 수는 없었다. 서울 시내에서 이런 수타면을 한 그릇에 5000원에 팔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음식이 나오는 부분만 뚫어 놓아 어렴풋이 보이는 주방에서 부부라고 들은 남녀가 면을 반죽하고 칼질을 하고 웍을 들썩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2층 공간에 나무 탁자, ‘도끼다시(돌 따위를 갈아서 무늬를 낸 인조대리석)’ 바닥의 중국집. 어린 시절 먹었을 법한 짜장면 한 그릇의 추억이 떠오르는 좁은 공간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나무 식탁에 햇살이 비쳐 반짝이는 하얀 면을 보며 나는 슬펐다. 짜장면도 만드는 사람도 이런 현실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 지나지 않아 그곳의 폐업 소식을 들었다. 사실은 그곳조차도 수타면 기술자인 주인이 조금 쉬엄쉬엄 짜장면을 뽑기 위해 선택한 입지였다고 얼핏 들었는데 피로가 쌓였던 걸까. 글을 쓰며 확인차 음식점의 개·폐업 소식에 밝은 이에게 물어보았으나 소식이 없다고 했다.

    짜장면은 외국에서 들어왔지만, 완전히 한국화되었으며 한식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되는 지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고소하고 두툼한 맛이 낸다./픽사베이
    유니콘에 비유하는 음식이 종종 있다. 본 것도 같고 어디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도 같은데 정작 찾아 나서면 없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 같아 계속 찾아다니게 된다. 짜장면은 한국 식문화의 대표적인 유니콘이다. 흔하디흔해서 먹자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먹으면 바로 실망한다. 이유가 뭘까. 일단 가격을 의심하기가 가장 쉽다. 서민 음식이라는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려우니 싼 가격 탓에 좋은 재료를 쓰는 등 맛을 찾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 IT 종사자인 아들이 양치던 부친과 함께 연 당산동 ‘대관원’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비싸도 맛없는 짜장면도 많다. 강서구청 사거리 근처의 큰 중식당-상호는 밝히지 않기로 하자-에서 9000원짜리 간짜장을 먹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다. 개량제로 질감을 강화했는지 딱딱했고 짜장이 잘 묻어나지 않는 면이 나왔다. 배달 짜장면은 면이 붇는 것을 막기 위해 식소다(탄산나트륨)를 더해 알칼리성을 강화한 물로 반죽한다. 면이 딱딱해져 잘 버티지만 그만큼 소스도 잘 묻어나지 않아 면 따로, 소스 따로 먹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배달도 안 하는데 이런 면을 내다니. 5000원짜리와 비슷한 빈약함을 조미료로 메우려는 짜장도 공허했다. 아삭함을 살려 훌륭하게 볶은 양파를 보면 실력은 빼어난 것 같은데 엉뚱한데 쓰는 느낌이었다. 요령을 부린달까.

    싼 음식은 싸니까 맛없음을 감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비싼 음식이 맛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외식에 기대를 품기가 어렵다. 딜레마에 시달리면서 최선이 아닌 것 같은 선택을 한 뒤 실망하고 후회한다. 조금 다행이라면 집 근처에 좋은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다는 점이다. 당산동의 ‘대관원’은 정말 우연히 발견한 음식점이다. 늘 다니던 동네 산책길의 건물 2층에서 우연히 ‘화상 중식당’이라는 간판을 목격하고 그대로 들어가 보았다. 개업 직후였는데 짜장면과 탕수육이 최선의 외식 형식이던 과거를 충실하게 재현한 완성도가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 그런 맛의 재현 및 가업의 계승을 위해 IT업계에 종사하던 아들이 은퇴 후 중국에서 양을 치는 부친과 작은아버지를 설득해 차린 음식점이었다. 연령 합계 200세의 주방에서 보드라운 면과 짭짤하게 볶은 짜장의 조화가 훌륭한 간짜장을 낸다.

    하지만 방송에 나온 뒤 이곳도 간신히 버티고 있다. 맛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의 고생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대표, 즉 IT업계 출신의 아들을 아주 오랜만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 들은 이야기도 음식의 느낌과 똑같았다. 개인의 이야기이니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겠지만, 방송에 출연한 음식점이 겪으리라 짐작할 수 있는 ‘후폭풍’을 겪었다고 했다. 몰려드는 인파와 쏟아지는 악평, 주변의 민원 등에 건강이 매우 나빠져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안타까웠다. 짜장면 한 그릇도 잘 먹기가 이렇게 어렵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거나, 설사 있더라도 사람을 ‘갈아 넣어’ 만드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편치 않다.

    ◆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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