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과 중국 인민해방군이 11일부터 5일간 냉전 시대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 ‘보스토크 2018(동방 2018)’을 실시한다.
같은 기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동방경제포럼을 계기로 올들어 세번째 회동한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이 각각 무역·외교 갈등을 겪고 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밀착 행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10일(현지 시각)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번 훈련에 병력 30만명과 군용기 1000대, 군함 80척, 전차·장갑차 3만6000대를 투입한다. 중국은 병력 3200명과 각종 무기·장비 900대, 전투기·헬기 30대를 동원해 1981년 이후 37년 만의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펼친다. 대규모 러시아 훈련에 중국군이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훈련은 동해와 베링 해협, 오호츠크해에 걸친 러시아 육군 훈련장 5곳과 러시아 공군 기지 4곳에서 실시된다. 러시아 2개 함대에서 해군 군함 2척도 훈련에 참가한다. 지난해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연합으로 ‘자파드 2017(서방 2017)’를 실시했을 당시 극동 시베리아에 한정됐던 훈련 지역은 중국과 몽골의 접경지역인 추골까지 확대됐다. 100만명에 이르는 러시아 전체 병력 중 3분의 1이 중국·북한 등과의 접경지에서 훈련을 전개하는 셈이다. 중국군의 참가 범위는 추골 지역으로 제한됐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통해 서방에 위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의 독살 시도 배후로 지목된 이후 서방의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이듬해인 2015년 북극에서 극동지역, 남부 조지아와 접경지역인 캅카스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며 무력을 과시한 바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달 보스토크 2018 실시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러시아를 향해 꽤 공격적이고 비우호적인 태도가 자주 보이는 것을 감안할 때 이 같은 방어 능력은 절대적으로 정당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고 밝혔다. 프란츠 클린트세비치 러시아 상원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은 "이번 훈련은 미국에 보내는 강력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딜런 화이트 나토 대변인은 "(보스토크 2018은) 러시아가 대규모 충돌을 몰고 올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봐왔던 방식, 즉 국방 예산과 병력 주둔지를 늘리는 등 더욱 공격적으로 변하는 러시아의 패턴에 들어맞는다"고 했다.
러시아가 보스토크 2018을 통해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는 관측도 있다. 이번 훈련은 전쟁을 가정하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과 무기, 장비를 투입한다는 점에서 기존 훈련과 다르기 때문이다. 미 싱크탱크 랜드코퍼레이션의 클린트 리치 정책 분석가는 "이번 훈련은 대규모의 전쟁·위기 상황에 대비할 기회"라며 "훈련은 북한 등 태평양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시험한 능력은 서방과의 분쟁에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경우, 보스토크 2018을 통해 군사력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러시아 군사전문가인 바실리 카신 러시아 고등경제대학 통합 유럽국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의 훈련은 중국이 국제전에 능한 전투력을 구축하려고 할 때 매우 필수적인 해외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군이 이번 훈련을 통해 러시아가 대규모 전쟁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뿐 아니라 보급 문제 등을 어떻게 다루는지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러시아와 사실상 군사동맹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2005년 이후 소규모 합동 군사훈련을 해왔지만 이 정도 규모의 연합훈련은 전례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훈련에서 핵 공격 모의연습도 실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핵 공격 훈련은 아무리 밀월관계의 국가라도 함께 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 카신 연구원은 "나토가 회원국들과 전력을 상호운용하는 것과 달리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은 적들에 맞서 나란히 싸우던 19세기 강대국 동맹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