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방송發 '집권 20년 플랜'

입력 2018.09.11 03:13

신동흔 문화1부 차장
신동흔 문화1부 차장
최근 KBS에선 직원 10여 명이 한꺼번에 징계위에 회부되는 일이 있었다. 징계 사유로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인 사내 질서 문란 행위와 '진실과미래위원회'(이하 진미위) 조사 불응 등이 제시됐다. KBS판 '적폐청산위원회'인 진미위가 징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현재 KBS는 기자·PD 등 10여 명이 파견된 진미위 추진단을 통해 자사 직원들의 발언과 행적을 조사하고 있다. 과거 정권과 친했던 이른바 '부역자'들을 찾아내 단죄하고, 4대강이나 세월호 침몰 등 주요 사건에 대한 보도 경위 조사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MBC 역시 지난 1월 노사 합의로 '정상화위원회'를 만들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개인 비리나 적폐 등을 이유로 14명이 해고됐다. 최근에는 정직 6개월을 받은 신동호 전(前) 아나운서에 대해 처벌이 약하다며 노조가 해고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사람들은 숨죽여 지낼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KBS에 진미위 추진단이 구성될 때 일부 직원이 추진단으로 발령 날까 봐 피해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몇몇 KBS 사람을 접한 한 지인은 "자기 손에 '피' 묻히는 것도 싫고, 나중에 경력에 오점으로 남을까 걱정하는 눈치들이었다"고 했다. 한 전직 방송사 간부는 "진실과 미래니, 정상화니 이름을 붙였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본질은 정치 보복"이라며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 자신들이 다시 보복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들이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알게 모르게 여당 편을 들지도 모른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흔들림 없이 바로 세워 달라. 정부도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성을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전(前) 정권에서 임명한 방송사 사장들이 나온 작년 방송의 날 행사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만약 지난해 방송의 날에 이와 같이 약속했다면 한국 방송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선출된 여당 대표는 "적폐 청산과 개혁 완수를 위해 (여당이) 최소 4번은 연속 집권해야 한다"는 이른바 '집권 20년 플랜'을 내세운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KBS와 MBC에서 적폐 청산을 주도하는 이들 역시 미래를 이야기한다. MBC 노조는 최근 노보에서 "'적당한' 청산은 '적당한' 미래만 낳을 뿐, 10년 뒤까지 우리 발목을 잡는 어두운 과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쥔 공영방송에서 현재 여당의 집권 20년 플랜이 시작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기자만의 억측일까, 아니면 '합리적 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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