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려는 몸부림

입력 2018.09.10 03:00

광주·부산비엔날레 잇따라 개막, "최대 규모지만 산만하다"는 평
'난민' 주제 작품 반복해 등장… 北미술 첫 선, 대가 작품은 없어

정찬부 작가의 ‘피어나다’. 조약돌처럼 생긴 작품은 모두 빨대로 만든 것이다. 빨아들이고 내뱉는 데 쓰는 빨대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숨쉬기와 닮았다.
정찬부 작가의 ‘피어나다’. 조약돌처럼 생긴 작품은 모두 빨대로 만든 것이다. 빨아들이고 내뱉는 데 쓰는 빨대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숨쉬기와 닮았다. /광주비엔날레

2000개 맥주병 위에 낚싯배가 올려져 있다. 쿠바 작가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는 정치·경제적으로 위태로운 쿠바를 탈출하려는 난민들 상황을 '취중 탈출'로 은유했다. 1995년 '경계를 넘어'란 주제로 처음 열린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뒤 23년 만에 광주에 다시 나타났다.

올 하반기 미술계의 화두는 경계와 분리다. 지난 7일과 8일 하루 차이를 두고 개막한 광주와 부산비엔날레의 제목도 각각 '상상된 경계들'과 '비록 떨어져 있어도'이다.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두고 어떻게 다르게 풀어냈는지 비교하며 관람하는 맛이 있다. 광주는 1995년 시작된 이래 12번째, 부산은 2002년 이후 9번째 행사다. 두 비엔날레는 모두 11월 11일까지 열린다.

최대 규모가 빚어낸 불협화음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단일 큐레이터가 아니라 11명의 큐레이터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43개국 165명 작가가 참여해 작품 300여점을 선보인다. 총 7개 섹션 중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 4개 섹션이, 나머지 3개 섹션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전시된다. '경계'라는 광범위한 키워드를 갖고 7개의 섹션은 각자의 목소리만 낼 뿐 화음을 이루지는 못했다. 섹션별로 전시의 수준이 고르지 않고, 일부 섹션들은 '난민'을 다룬 작품이 중복해 겹치기도 한다.

장 드 르와지 팔레 드 도쿄 관장은 "경계라는 주제를 정치적으로 풀어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의 작품들은 좀 빤해(obvious) 보인다. 오히려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ACC가 재밌었다"고 했다. 그가 인상 깊게 본 작품은 강서경 작가의 '검은자리 꾀꼬리'. 조선시대 궁중무인 춘앵무에 바탕을 둔 이 영상 작품에서 무용수는 2㎡짜리 화문석 위에서 제한된 움직임을 보여주거나 여러 물건을 위태롭게 쌓아올린 자리에서 끊임없이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 플라스틱 빨대를 이용해 만든 정찬부의 '피어나다'나 무속인들을 소재 삼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다룬 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도 눈길을 끈다.

①‘초코파이’ 5만개를 쌓아서 만든 천민정 작가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②독일 통일 이후의 변화를 보여주는 헨리케 나우만의 ‘2000’. ③맥주병 2000개와 나무 낚싯배로 만든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①‘초코파이’ 5만개를 쌓아서 만든 천민정 작가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 ②독일 통일 이후의 변화를 보여주는 헨리케 나우만의 ‘2000’. ③맥주병 2000개와 나무 낚싯배로 만든 크초의 ‘잊어버리기 위하여’. /부산비엔날레·광주비엔날레· 변희원 기자

'북한 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는 비엔날레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북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긍정적이지만, 조선화(동양화의 전통을 이은 북한 미술 장르)의 대가라고 할 만한 작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전시 제목은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인데 그에 대한 고찰이 부족한 것도 아쉽다. 큐레이터 문범강은 "북한엔 선전화뿐만 아니라 인민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맥락에서 보자면 '일상' 역시도 선전의 일환이다.

초코파이 5만개로 분단을 말하다

'초코파이' 5만개가 둥글넓적하게 쌓여 있다. 관람객은 현장에서 먹고 지정된 곳에 껍질을 버려야 한다. 개성 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이 초코파이를 즐겨 먹은 데서 착안한 천민정의 '초코파이 함께 먹어요'다.

부산현대미술관과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열리는 부산비엔날레의 참여 작가는 광주의 절반도 안 되는 66명이고 작품 수는 125점이다. 큐레이터인 와그르 하이저는 "최근 몇 년 동안 각국의 비엔날레와 초대형 전시는 사람들 앞에 모든 것을 망라하는 것이 타당하고 유효하다는 오만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분리' '분단'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한반도 분단이나 난민 사태를 다룬 작품들의 비중이 높다.

공상과학에 가까운 상상력을 펼친 작품들을 전시한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전시가 볼 만하다. 필 콜린스의 '딜리트 비치'는 버려진 기름통, 타이어, 해수욕장 시설물과 시커먼 기름을 동원한 설치 작품과 영상으로 화석 연료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비판한다. 이민휘와 최윤이 협업한 '오염된 혀'는 냉전이 남긴 이데올로기의 흔적을 곡으로 만들어 뮤직비디오 형태로 선보인다. 엉뚱한 노래 가사와 엉성한 춤에 중독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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