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의 복수극이 끝나자… 환호 대신 고요만 남았다

조선일보
  • 이태훈 기자
    입력 2018.09.10 03:00

    [연극 리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권력에 눈이 먼 장군 도안고(장두이)는 문신 조순(유순웅)을 모함해 그의 구족(九族) 300명을 멸살한다. 조씨 집안과 인연 깊은 정영(하성광)은 마흔다섯에 얻은 늦둥이를 대신 내주고 마지막 조씨 핏줄(이형훈)을 구해낸다. 이 아이를 살리려 사람들이 죽고 또 죽어간다. 단도로, 머리끈으로, 돌에 스스로 머리를 찧으면서. 이들이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이유는 단 하나, 끝내 도안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연출 고선웅)' 무대 위엔 죽음이 난무한다. 정영은 제 친아들을 조씨 고아로 여긴 도안고가 땅에 세 번 내리쳐 죽이는 걸 무력하게 지켜본다. 죽음을 겪거나 지켜보는 배우들의 말은 칼이 돼 가슴을 찌른다. 만들어진 대의와 명분에 스스로를 옭아맨 인간들에게 평안은 없다. 깊어지는 비극 속으로 소용돌이치듯 끌려들어 갈 뿐이다.
    멸문당한 조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 조씨 고아(오른쪽). 시골 의원 정영을 통해 양아버지 도완고가 실은 가문의 원수인 것을 알게 된다.
    멸문당한 조씨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 조씨 고아(오른쪽). 시골 의원 정영을 통해 양아버지 도완고가 실은 가문의 원수인 것을 알게 된다. /국립극단

    조명과 음악은 감정을 어디까지 밀어올릴 수 있는지 시험하듯 내달린다. 애끊는 고통이 무대 위를 휘몰아치는데, 객석은 짧고 굵은 폭소로 자주 일렁인다. 이 비극을 뒤집어 보면 사실은 말도 안 되게 희극적이라는 것을, 배우들이 과장된 몸짓과 발성을 통해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 긴장과 이완의 리듬감에 "쥐면 펴야 하고 이화(異化)가 있어야 동화(同化)도 있다"는 고선웅 연출의 지론이 스며 있다.

    격동적인 복수의 클라이맥스가 지나가고, 정영은 죽어간 이들의 환영과 만난다. 소중한 걸 다 내주고 20년을 기다려 복수에 성공했는데,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공허의 무중력 공간이 된 무대 위로 지켜본 사람의 마음이 닻줄 끊어진 배처럼 떠돌 때 정영은 관객을 향해 말한다. "우환을 만들지도, 당하지도 마시고 부디 평화롭기만을.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원작은 사마천 사기에 나온 춘추시대 사건을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중국 고전. 2015년 초연 때 대한민국 연극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듬해 중국 공연 때 "중국 대형 연극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중국 극장에서 중국 이야기로 중국 관객을 정복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공연은 10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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