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영업사원에 수술 맡긴 의사…'묻지마 수술'에 환자 뇌사

입력 2018.09.07 15:09 | 수정 2018.09.07 16:12

"바쁘다"는 이유로 의료기기 영업사원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을 조작한 병원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7일 부산영도경찰서는 의료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영도구 소재 정형외과 원장 이모(46)씨를 구속하고, 이씨 대신 ‘대리수술’을 한 의료기기 판매업체 영업사원 박모(36)씨를 무면허 의료 혐의로 함께 구속했다고 밝혔다. 병원 원무부장과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5명도 진료기록 조작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 5월 10일 사복 차림으로 수술실을 빠져나가는 정형외과 원장 이씨 모습. /부산지방경찰청 제공
경찰에 따르면 의료기기 업체 영업사원 박씨는 지난 5월 10일 어깨뼈에 이상이 있는 환자 A(44)씨에 대한 견봉성형술(어깨의 볼록한 부분인 ‘견봉’ 부위 뼈를 평평하게 다듬는 시술)을 대리수술 했다. 의료기기 업체에서는 갑(甲)인 정형외과 원장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업사원 박씨는 환자 A씨에 대한 마취→어깨 절개→시술까지 1시간 수술 과정 대부분을 집도했다. 뜻하지 않게 ‘무면허 수술’을 받은 A씨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뇌사(腦死) 상태에 빠졌다.

이때만 해도 A씨 가족들은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 집도한 사실을 몰랐다. 이들의 ‘묻지마 의료행각’이 발각된 것은 경찰이 A씨 가족으로부터 의료사고 진정서를 접수한 이후부터다.
영도경찰서는 병원 CCTV를 분석을 통해 ‘영업사원 대리수술’ 범죄의 꼬리를 잡았다. 수술 10여분 전쯤 영업사원 박씨가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CCTV 분석 결과, 정형외과 원장 이씨는 사복 차림으로 수술실에 20여분간 머물다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경찰 수사에서 이 정형외과 원무부장은 A씨로부터 ‘수술 전 동의서’를 받지 않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의서 서명을 위조했던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이 병원 간호조무사는 대리수술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진료기록도 허위로 기재했다.


영업사원 박씨는 경찰조사에서 "원장 이씨가 ‘외래 진료 때문에 바쁘다’면서 대리수술을 맡겼다"며 "병원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술을 맡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이전에도 9차례에 걸쳐 같은 정형외과 수술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는데, 추가 대리수술 행위에 대해선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내시경 의료기기 관련 소모품을 병원에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어깨너머로 수술을 배운 것 같다고 경찰은 전했다.

원장 이씨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이 물증을 하나씩 제시하자 결국 "혼자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 외래 진료를 보느라 바빴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기기를 잘 다루기 때문에 (수술을) 맡겼다"며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9차례나 수술실에 드나든 것은 ‘수술 집도’가 아니라 ‘기기 보조’였다고 주장하지만,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이 외에도 추가 대리수술 혐의점에 대해서 수사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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