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통계 조작이 美 베트남戰 오판 불렀다

조선일보
  • 이유신 영남대 정외과 교수
    입력 2018.09.07 03:10

    이유신 영남대 정외과 교수
    이유신 영남대 정외과 교수

    1965년 베트남전(戰)에 대규모 지상군을 파견하며 본격 개입한 미국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전쟁을 수행했다. 이전 전쟁과 달리 뚜렷한 전선이 없는 게릴라전이었다. 게릴라전에서 전세(戰勢)의 유불리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때 미국이 사용한 지표가 적 사망자 수다.

    베트남전을 지휘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예하 부대에 이 수치를 정확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는 별명을 가진 맥나마라는 통계 수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당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수치는 적 사망자 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예하 부대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부풀려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적 사망자 수는 급격히 늘어 한 해 30만명이라는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다.

    미 외교사학자 로버트 슐징거의 저서 '미국 외교: 1900년 이후'에 따르면 맥나마라 장관은 1967년 중반까지 이 숫자를 신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문이 커졌다. 보고된 숫자만큼 전사자가 발생하면 적군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어야 하는데,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 사망자 통계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수치 조작이 없었다면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찍 깨닫고 서둘러 철수해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맥나마라의 일화는 통계 수치 조작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첫째 교훈은 지도부가 특정 수치에 관심을 보이면 부하들 사이에서 이 수치를 부풀리는 경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적 사망자 수에 대한 맥나마라의 관심이 커지자 각 부대가 사살한 적군 수는 군인들의 승진·포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미군들은 승진이나 포상에서 누락되지 않기 위해 이 수치를 부풀린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구(舊)소련에서도 발견된다. 국가 지도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생산 목표량 달성이었다. 각 공장은 품질이 떨어지거나 쓸모없는 상품을 만드는 편법을 동원해 정해진 목표량을 달성했다.

    둘째 교훈은 통계 수치는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언젠가 실체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구소련 붕괴 당시 카스피해(海)가 서방에 개방되자 석유 매장량이 급속도로 부풀려졌다. 중동 매장량에 버금간다는 통계 수치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외국 기업들이 진출해 석유 개발을 한 결과 실제 매장량은 당초의 20% 정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셋째 교훈은 조작된 통계에 근거한 국가 정책은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열등한 베트남에 패배한 요인 중 하나로 과장된 적 사망자 수를 근거로 삼아 적의 전쟁 의지를 과소평가한 게 거론된다. 부풀려진 통계 수치를 믿고 카스피해에 진출했던 석유 기업들은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맥나마라의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운 정부는 고용 및 소득 분배 수치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최근 가계 소득 동향을 발표한 통계청장이 갑작스럽게 교체되자 정부가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통계'를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행여 정부가 암묵적으로 이런 통계를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정책을 수립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조작된 통계는 결국 그 실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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