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크레이지타운(crazytown·미친 동네)'에 살고 있다."
존 켈리 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 행정부와 백악관을 묘사한 말이다. 백악관은 대통령과 참모들이 서로를 헐뜯고 모욕하는 아수라장이고, 트럼프 측근들은 그가 어디로 튈지 몰라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닉슨 전 대통령의 탄핵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유명한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사진〉 기자가 오는 11일 출간하는 '공포(Fear)'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은밀한 속사정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관계자들을 심층 인터뷰해서 쓴 책이다.
4일(현지 시각) 미리 공개된 책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의 핵심 인사 가운데 대통령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켈리 비서실장은 한 모임에서 트럼프를 "바보(idiot)"라고 부르면서 "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제껏 했던 직업 중 최악"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의 이해 능력과 행동거지는 딱 초등학교 5~6학년 수준"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변호사 존 다우드조차 트럼프를 "거짓말쟁이"라고 규정하며, "만약 트럼프가 뮬러 특검에 나가 증언할 경우, 곧바로 오렌지색 죄수복을 걸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곁을 떠난 이들의 비난 수위는 더 높았다. 라인스 프리버스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트럼프가 트위터를 올리는 침실을 "악마의 작업실"이라 칭하며, 대통령이 게시물을 자주 올리는 이른 아침이나 일요일 저녁을 "마녀가 출몰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전 백악관 비서관 롭 포터는 "트럼프와 함께 일하는 건 벼랑끝을 영원히 걷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트럼프의 전·현 참모진이 등 뒤에서 그를 헐뜯은 반면,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들을 모욕했다. 프리버스를 향해선 "쥐새끼 같은 인간"이라고 했고, 제프 세션스 법무 장관에 대해선 "지능이 떨어지는 멍청한 남부 놈"이라고 불렀다.
트럼프의 가족도 정부 인사들과 종종 마찰을 일으켰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트럼프의 맏딸 이방카에게 "당신이 책임자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당신은 빌어먹을 참모라고!" 하고 소리지르자, 이방카는 "난 참모 따위가 아니야. 난 '퍼스트 도터(first daughter)'야!"라며 맞받아쳤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지시에 대응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작년 4월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이 민간인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하자, 트럼프는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제기랄, 그놈을 죽여버리자(Let's fucking kill him)"며 암살을 지시했다. 매티스 장관은 "즉시 착수하겠다"고 답했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고위 참모에게 "우린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훨씬 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리 콘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결국 환멸을 느끼고 사임하자, 켈리 비서실장은 "나 같으면 사직서를 써서 (대통령의) 항문에 6번은 밀어넣었겠다"며 다독였다. 우드워드는 이런 일련의 상황을 "행정부의 쿠데타" "(행정부의) 신경 쇠약"이라고 진단했다.
책 내용이 공개되자 트럼프와 백악관은 발끈했다. 트럼프는 이날 우드워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왜 나한테는 인터뷰 요청을 안 했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WP는 이날 트럼프와 우드워드가 한 11분 통화 녹음을 공개했다. 우드워드가 여러 명에게 요청했다고 하자 트럼프는 "누구에게 요청했느냐"고 꼬치꼬치 물었다. 트럼프는 통화 도중 콘웨이 고문을 불러 우드워드와 직접 통화하게 하면서 "왜 내게 직접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트럼프는 "사람들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나도 바쁘고 그들도 바쁘고"라는 말도 했다.
책 내용이 보도되자 트럼프는 이날 트위터에 "우드워드의 책은 날조"라는 백악관 성명 등 우드워드를 반박하는 게시물을 7건이나 올렸다. 그는 "켈리와 매티스가 했다는 말은 다른 말과 마찬가지로 사기고, 날조다. 우드워드는 민주당 공작원인가?"라며 비판했다. 켈리 실장과 매티스 장관도 성명을 통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