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헌법 미리 만든 北… 소련 지시로 南보다 늦게 정권수립

조선일보
  •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18.09.05 03:01

    [다시 보는 1948년 대한민국 출범] [11] 북한 정권이 수립되다
    최고인민회의 9월 2일 개최… 9일 '공화국' 선포·내각 확정
    노동당 결성·농지개혁·국유화… 1948년초 사회주의 체제 이미 구축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지수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열흘 뒤인 1948년 8월 2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전격 실시했다. 북한 지역의 212개 선거구에서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민전)'이 추천한 단일후보가 출마한 찬반투표였다. 민전은 북조선노동당을 포함한 13개 정당 및 사회단체가 결성한 정치단체였다. 그들이 공표한 결과는 투표율 99.97%에 찬성률 98.4%였다.

    대한민국이 북한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지 못해 남한만으로 국회를 구성한 데 반해, 그들은 남한에서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했다고 주장한다. 1948년 7월 중순부터 남한에서 비밀 지하선거를 통해 1080명의 남한 인민대표를 선출했고, 그들이 8월 21일 해주에 모여 360명의 남한 측 대의원을 선출했다는 것이다. 북한에 머물던 남한 출신들이 비밀리에 남한에 내려가 나름 선거를 진행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누구도 이를 사실로 믿지 않는다.

    1948년 9월 2일 최고인민회의 1기 1차 회의가 개최됐다. 이들은 9월 8일 사전 준비된 헌법 초안을 원안대로 비준했다. 이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두봉, 내각 수상 김일성, 부수상 박헌영·김책·홍명희를 공표했다. 다음 날인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됐고 내각 명단이 확정됐다. 그리고 최고검찰소장 등 정부 요직의 임명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날짜만 보면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정권보다 먼저 수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토지개혁이나 각종 법안과 정책이 실시되면서 나라의 형태를 갖춰 갔지만,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정권 수립 이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그 이전에 전혀 새로운 체제 건설이 진행돼 이미 완성 단계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론에 따르면 어차피 소멸될 국가나 국가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을 완수할 지휘사령부다. 한반도 공산혁명의 사령부인 조선노동당은 북조선노동당과 남조선노동당이 통합해 만들어졌다. 북조선노동당은 1946년 8월 북조선공산당이 신민당과 합당해 탄생했고, 남한에서도 1946년 11월 조선공산당이 인민당·신민당과 합쳐 남조선노동당이 됐다. 두 당이 통합한 것은 1949년 6월 30일이지만 지금 북한은 '조선공산당 이북5도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에서 김일성이 기조연설을 한 1945년 10월 10일을 조선노동당 창건일로 기념한다. 김일성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이때 확립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창설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사실상의 정부기관이었다. 이날부터 북한에서 사회주의 체제 수립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북한 정권 수립을 앞둔 1948년 7월 10일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하고 있다.
    북한 정권 수립을 앞둔 1948년 7월 10일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태극기를 내리고 인공기를 게양하고 있다. 해방 이후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던 북한은 태극기가 동아시아 봉건주의 사상의 산물이라고 본 소련군으로부터 새로운 국기 도안을 건네받아 태극기를 폐지하고 대신 이를 채택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 국가에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는 경제체제이다. 북한에서는 그 결정이 1946년 초 내려졌다. 이른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농지개혁은 사회주의 경제 틀을 일방적으로 확정한 대표적 예다. 그 외에도 은행 등 주요 산업의 국유화 조치를 비롯한 굵직굵직한 사회주의 경제정책이 남북한 단일정부 수립을 목표로 진행된 미소공동위원회나 남북협상 이전에 시행되고 있었다. 국가 운영의 토대가 되는 헌법 초안도 1948년 2월 10일 이미 공포됐고, 4월 29일 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승인됐다.

    군대의 창설도 새로운 국가 건설의 필수 작업이다. 1946년 2월 8일 군(軍) 지휘관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평양학원을 열면서 시작된 북한의 창군(創軍) 작업은 1947년 5월 17일 정규군 체계를 갖춘 북조선인민집단군사령부 창설로 이어졌고,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으로 공식화됐다.

    북한이 정권 수립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끝내고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다려 이를 공식화한 것은 소련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1948년 4월 24일 '결정사항'으로 북한의 헌법 초안을 승인하면서 "남조선에서 단독선거가 단행되어 남조선 정부가 단독 수립될 경우 본 헌법에 기초하여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진행할 것. 장차 조선이 통일될 때까지 최고인민회의는 북조선 영내에서 최고 주권기관이 된다. 최고인민회의는 내각제 정부를 창설한다"고 지시했다. 이후 북한의 정치 일정은 정확하게 이 지시대로 진행됐다.

    남한에서 제헌국회 선거가 임박한 와중에 1948년 4월 말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협상은 소련과 북한의 전형적인 이중 전술이었다. 북한은 또한 남한에서 실시되는 5·10 총선을 방해하기 위해 선거 반대 투쟁 대원을 남쪽으로 파견했다. 선거 당일에는 평양과 각도 소재지에서 단독선거 반대 군중집회가 열렸다.

    이처럼 북한에서는 1945년 9월 소련군 진주 이후 꾸준히 사회주의적 체제가 구축되었고, 1948년 초에 사실상 완성된 국가 체제를 1948년 9월 9일 공개했을 뿐이다.


    공동기획: 한국정치외교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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