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줄 아는 건 옷뿐… 옷더미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8.09.05 03:01

    '푸시버튼' 브랜드 디자이너 박승건, 1년 심사 끝 런던 패션위크 무대에

    남색 세일러복 상의에 구불구불한 귀밑 단발을 한 그의 등장에 시청자들은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 TV에 등장하기만 하면 시청률 급상승에 실시간 검색어 1위다. 온라인 댓글 창에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오른다. "이분 대체 정체가 뭐예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개그맨인지 가수인지 어디에 붙여도 어울려 보인다. 그런데도 "저 소심해요" 하며 손사래 치는 그는 패션 디자이너 박승건(44)이다. 지난 2010년 '푸시버튼' 브랜드로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 밀라노 엑셀시오르 등에 입점하며 세계 패션계 문을 열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과 '주군의 태양'의 공효진 의상으로 '공블리(공효진+러블리)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2018 가을·겨울 시즌으로 선보인 인조 퍼(fur) 코트를 걸친 '푸시버튼' 디자이너 박승건.
    2018 가을·겨울 시즌으로 선보인 인조 퍼(fur) 코트를 걸친 '푸시버튼' 디자이너 박승건. 브랜드 이름 '푸시버튼'은 그가 좋아하는 마돈나 노래 '할리우드' 가사 속 '푸시 더 버튼(push the button)'에서 따왔다. /장련성 객원기자
    박승건은 18일 런던 패션위크 무대를 밟는다. 영국패션협회와 서울시디자인재단이 1년 넘게 진행한 심사에서 최종 선택을 받았다. 화려한 색감과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런던 패션위크는 현재 패션계를 달구는 JW 앤더슨, 에르뎀, 마르케스 알메이다 등이 주목받은 무대다. "저도 이제 하이엔드 패션계에서 좀 인정을 받는가 봐요. 몇 년 전만 해도 그쪽에 끼워주지도 않았는데…."

    '그쪽'이 아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였다. 여성성 강한 모습과 말투에 남들이 손가락질했다. "어릴 때 제가 좋아한 마돈나와 김완선 얼굴을 매일 몇 시간씩 그렸어요. 아버지가 호통치다가 쥐여주신 건 태권도 도복이었지요."

    몰래 구한 일본 패션지와 노래 부르기가 그의 안식처였다. 열아홉 살 때 서울 압구정동 가라오케에서 신나게 노래 부르다 프로듀서 눈에 띄어 덜컥 가수로 데뷔했다. '꿈을 찾아서'란 곡으로 음악 순위 상위권에도 올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았지만 사실 암흑이었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간다더니, 죽어라고 꿈은 찾는데 제 맘대로 되는 게 없더라고요. 왜 다리를 다소곳하게 모아 앉느냐, 목소리가 여자 같다, 계집애 같은 일본 옷은 버려라…."

    2018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푸시버튼 쇼에서 겹겹의 체크 의상을 입은 모델 장윤주.
    2018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푸시버튼 쇼에서 겹겹의 체크 의상을 입은 모델 장윤주. /푸시버튼
    하지만 옷을 빼고는 그가 존재할 이유는 없는 듯했다. 시대복장학원에서 패션을 배웠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걸로 꿈을 찾겠다고 했지요. 서른 살 때쯤 집 근처 이태원에 옷 매장을 열었어요. 지금과 달리 밤 문화와 짝퉁 시장만 있었던 이태원에요! 다들 미친 짓이라고 또 손가락질했죠."

    솜씨를 알아본 스타일리스트들이 박승건의 매장을 패션계 핫플레이스로 바꿔놨다. 패션 기업들도 협업하자며 찾아왔다. "욱준이 형(정욱준 디자이너)이 어느 날 '너도 쇼를 제대로 해봐야지' 하는 거예요. 조직에 끼는 게 무섭다고 했더니 형이 대뜸 그러데요. '얘, 내가 여기 부녀회장이야' 그 한마디에 도전하게 됐죠."

    2010년부터 서울컬렉션 무대에 선 그는 복고풍 느낌에 남녀 구분이 모호한 앤드로지너스 룩(androgynous look)의 국내 선두 주자로 꼽힌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패션 스타일이기도 하다. 미국 연예계 패셔니스타인 리하나와 패리스 힐튼도 그의 옷을 찾아 입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제 방을 정리해 주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도 네 옷, 저기도 네 옷이다. 썩을 놈, 이거 안 샀으면 강남에 집이 한 채다.' 제가 그랬죠. '엄마도 참 모른다. 적어도 세 채야.'" 할 줄 아는 게 옷밖에 없고 옷더미에 둘러싸일 때 가장 행복하다며 박승건이 옷감을 매만졌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