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시간여행] [129] 10대 칼부림 늘자 '칼 안 팔기·안 갖기 운동'… "칼로 연필도 깎지 말자" 주장도

입력 2018.09.05 03:12

10대 청소년들의 칼부림 사건이 속출하던 1963년 골머리를 앓던 경찰이 희한한 '예방책'을 하나 내놓았다. 서울시경이 8월 1일부터 대대적으로 전개한 '칼 안 팔기·칼 안 갖기 운동'이다. 칼은 '소년 범죄의 불씨'로 규정됐다. 경찰은 상인들에게 주머니칼과 과도를 포함해 모든 칼을 10대에게 팔지 말라고 계도했다. 중·고교마다 협조 공문을 보내 매주 한 번 이상 학생들 소지품을 검사해 칼을 빼앗아 달라고 요청도 했다(조선일보 1963년 7월 31일자).

소년 범죄의 예방책으로 경찰이‘칼 안 팔기·칼 안 갖기 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1963년 7월 31일자).
소년 범죄의 예방책으로 경찰이‘칼 안 팔기·칼 안 갖기 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1963년 7월 31일자). 보름간의 계몽 기간이 끝나면 경찰은 칼을 가진 불량소년들을 잡아내기 위한 검문검색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공권력이 시민단체처럼 '○○ 안 하기 운동'을 벌인다는 것부터가 좀 낯선 일이었다. 당시 청소년 범죄 상황이 워낙 심각하기는 했다. 1962년 한 해 소년들이 저지른 살인·강도·절도는 서울에서만 1만4600여건에 이르렀다. 불량 청소년들은 캠핑 도구니 호신용이니 하는 핑계로 조그만 칼을 갖고 다녔다. 10대들이 휘두른 칼에 사람이 숨지는 충격적 유혈 참극이 가끔 일어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언론도 '칼 안 갖기'라는 별난 운동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신문 지상에선 칼이 '몰매'를 맞았다. '칼을 가지면 마음이 나빠진다'는 글도 실렸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연필을 칼로 깎는 일도 좋지 않다'는 전문가 견해도 활자화됐다(경향신문 1963년 8월 2일자).

경찰은 거리의 10대 중에서 좀 불량기가 있다 싶으면 세워놓고 "칼 있으면 내 놔!"하며 호주머니를 뒤졌다. 1963년 8월 16일부터 1주일간 서울 일대 공원과 유원지에서 실시된 불심검문에선 흉기를 가진 청소년 141명을 적발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하지만 그중 '칼'을 가진 사람은 단 28명뿐이었다. 절대다수인 112명이 가진 흉기라는 건 송곳, 망치 등이었다. 칼 소지로 적발된 28명 중에서도 대부분인 26명이 가진 건 과도였고 2명만이 잭나이프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송곳 안 팔기' '망치 안 갖기' 운동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칼 단속은 계속됐지만 일상용 도구이기도 한 칼을 흉기로만 몰려다 보니 무리가 빚어졌다. 경찰이 주방용품점의 생선회칼까지 압수했다가 주인이 "부엌칼도 안 되면 대한민국 모든 주부도 잡아가야 하지 않으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회칼을 도로 돌려준 일도 있었다.

탁상 행정의 냄새를 풍겼던 '칼 안 갖기 운동'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 운동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 오늘에도 있다. 지난주 중앙자살예방센터와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앞으로 번개탄을 매장에 진열하지 않고 주문이 있으면 꺼내 팔기로 했다고 한다. 번개탄 봉투엔 '오늘 당신 괜찮은가요?' 등 자살 방지 문구도 넣는다. 어느 지방 수퍼에선 번개탄 구매자에게 "어디에 쓰실 건데요?"라고 꼭 묻기로 했다고 한다.

번개탄 자살을 막기 위해 번개탄 판매를 규제하려는 아이디어는 칼부림을 줄여보려고 칼 안 팔기 운동을 벌인 발상과 닮아 보인다. 인명을 해치는 물건에 대한 규제가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그걸 쓰는 '사람'에 대한 처방이 근본적 대책이란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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