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政權마다 '간판 정책' 바뀌는 도시 계획

조선일보
  •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입력 2018.09.03 03:17 | 수정 2018.09.03 09:06

    10년 전엔 '유비쿼터스 도시', 지금은 '스마트 도시' 열풍… 권력 이동 때마다 쏠림 현상
    '도시 경쟁력 강화' 내세우지만 막대한 예산 따러 몰려다니고 사생활 감시 등 부작용은 뒷전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지난 2007년 5월 23일은 전 세계적으로 도시 인구가 비(非)도시 인구를 양적으로 능가한 역사적인 날이었다. 누가 일일이 세어본 것은 아니지만 인구학적으로 그렇게 추정된다는 말이다. 우리 인류가 싫든 좋든, 오늘날과 같은 문명사회를 이룩한 것은 도시의 출현이 계기였고 도시의 발전이 배경이었다. 작금의 세상은 지구 전역에서 '도시의 승리'를 구가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 비율은 OECD 기준 90%에 육박할 정도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남들보다 앞서고 빠른 도시화 덕분일까, 도시의 미래에 대한 관심에서도 우리나라는 남들과 유별한 측면이 있다. 이미 10여 년 전에 세계 최초 및 세계 유일의 '유비쿼터스 도시' 관련 법률을 제정한 나라가 바로 우리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유시티'의 한계와 실패가 스멀스멀 부각되더니 마침내 올해 3월, '스마트 도시 관련' 법률이 다시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는 '스마트 도시'를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며, 최근 부산시와 세종시에서 시범 사업의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솔직히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 유비쿼터스 도시와 스마트 도시의 결정적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전자는 정보 통신 혁명, 후자는 4차 산업혁명에 각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설명을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다수 보통 사람은 네트워크, 모빌리티,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블록체인, 플랫폼 등 날이 갈수록 더 현학적(衒學的)이 되어가는 유관 전문 용어들 앞에서 그저 압도당하거나 주눅만 들기 십상이다.

    스마트 도시의 취지는 정보통신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행정, 환경, 에너지, 교통, 방범, 방재, 의료, 교육, 복지 등에 걸친 도시 기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선의의 목적이 초래할지 모르는 역효과와 부작용이다.

    이런 종류의 염려는 21세기 스마트 도시 담론(談論)이 처음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도시 계획 자체에 내재된 원초적 딜레마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기술 낙관주의와 과학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19세기 근대 도시 계획에서 '감옥'의 그림자를 읽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도시 기능의 효율화가 곧 도시의 존재 이유도 아니고, 도시 경쟁력 강화가 곧 도시의 최종 목표도 아니다. 그런데 스마트 도시는 유독 이 대목에 명운을 건다. 또한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처방, 기록, 계산, 평가, 예측, 관리, 배열, 조절, 감시, 처벌하는 원리에 따라 그것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그런 도시는 유토피아 못지않게 디스토피아(dystopia·反이상향)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자발성 및 창조성이 쇠퇴하면서 삶의 전반적인 피동화, 규율화, 식민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면대면(面對面) 소통, 배려, 친절, 양보, 희생, 용서 같은 가치(價値)는 사회 시스템의 원활한 기계적 작동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생각될지 모른다.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닛은 "너무 똑똑한 도시는 결국 인간을 멍청하게 만들고, 각 개인으로부터 삶에 대한 소유권을 뺏어간다"고 했다.

    스마트 도시에는 나름의 장점이 없지 않다. 역사적으로 도시의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불가분의 관계였기에 우리 시대 디지털 문명 또한 어떻게든 도시의 미래에 개입하고 관여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마트 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둘러싼 인문사회학적 성찰과 토론은 일부러라도 적극적으로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출중한 과학·기술 역량을 바탕으로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스마트 도시에 접근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실제 돌아가는 모습은 이와 정반대다. 우리나라 도시 계획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류(時流)에 따라 '쏠리고 몰리는' 관행이다. 권력 이동과 더불어 간판 정책이 바뀔 때마다, 이해 당사자들은 막대한 예산이 쏟아지는 '기회의 땅'으로 일제히 달려간다. 최소한 이 점에서는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중앙과 지방, 공공과 민간, 업계와 학계가 별반 다르지 않다.

    작금의 스마트 도시 열풍 역시 가치 논쟁은 없고 '그들만의 잔치'만 풍성하다. 무엇을 위한 효율성이고 누구를 위한 경쟁력인지를 묻지 않는 '철학의 빈곤'은 스마트 도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담론이든 정책이든 스마트 도시라면 '스마트'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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