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 페이지 성경에는 250마리의 양가죽이... 도서관을 둘러싼 진귀한 이야기

입력 2018.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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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켈스 지음 |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352쪽 | 1만6000원

"1000년에는 보통 크기의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동물 수십 마리의 가죽이 사용되었고, 심지어 수백 마리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1천 페이지 분량의 성경에는 250마리의 양이 필요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부터 이집트의 파피루스, 유럽의 양피지, 중국의 종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책을 욕망해왔다. 특히 중세 시대에는 보통 크기의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동물 수십 마리의 가죽이 필요했고,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필경사가 한 글자 한 글자 공들여 써야 했다. 그래서 책은 비쌀 수밖에 없었고, 귀족이나 교회 같은, 권세와 부를 겸비한 존재가 아니고서야 많은 장서를 갖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시대에 책을 모아두는 도서관은 애서가들에게 꿈의 공간이나 나름없었다. 고서 연구가 스튜어트 켈스는 ‘모든 국가에서 쓰인 모든 언어로 된 책들’을 모으고자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부터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서들이 보관된 바티칸 도서관, 셰익스피어 주요 판본을 모아놓은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상상 속 도서관까지 모든 애서가가 꿈꿔온 도서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발전에 따라 도서 진열 방식은 달라졌다. 고대의 네모난 점토판 형태의 책을 선반이나 쟁반에 똑바로 놓아 관리했다.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는 함이나 벽감, 모자 보관 상자처럼 생긴 통에 보관했다. 표지가 없는 두루마리를 매번 펼쳐봐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는 두루마리에 라벨을 붙이기도 했다.

인쇄술이 발달한 중세 후반 책의 수가 증가하면서 책은 수직으로 나란히 꽂히기 시작했다. 현재는 책등에 제목을 쓰는 게 보편적이지만, 초창기 책은 그렇지 않았다. 15~16세기 도서관들은 책등이 안으로 들어가게 책을 꽂았고, 이에 따라 책장이 절단된 면인 책배에 제목을 적었다.

별난 장서가들도 있었다. 영국의 새뮤얼 피프스는 편집증적으로 일직선에 집착해 높이가 다른 책들이 들쭉날쭉 꽂혀 있는 모습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가죽을 두른 나무 받침을 주문 제작해 높이가 낮은 책 밑에 받쳐두었다. 파블로 망겔이란 수집가는 산 책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책의 위아래 여백을 잘라냈다.

사기꾼과 도둑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고대엔 희귀한 고서 몇 권이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 주변에 사기꾼들이 들끓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책이 인기 있어, 날조된 책이 도서관에 팔리기도 했다. 책 도둑들이 사서나 수도사를 매수해 도서관의 희귀본을 빼내는 것도 흔한 수법이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흔히 ‘책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보들리언 도서관의 사서는 그 학교의 졸업생이자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결혼을 하면 가정 문제가 넘쳐나기 때문이었다고.

인쇄술과 제본술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온 도서관은 오늘날 디지털화와 함께 또 한 차례의 변화를 맞았다. 투입과 생산, 성과라는 틀에서 보면 종이책과 도서관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축적하는 장소가 아니다. 저자는 문명을 전달하는 도서관이 활기 넘칠 때 학생과 학자, 큐레이터, 자선가, 예술가, 장난꾼, 바람둥이들이 모여들어 무언가 멋진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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