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2부⑯]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방북 특사, 美北 교착 국면 풀 수 있다"

입력 2018.08.31 21:00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3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희훈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월 5일 평양에 특별사절단을 보낸다. 청와대는 31일 북측에 전통문을 보내 문 대통령의 특사 파견을 제안했고, 북측은 이를 수용하겠다는 내용의 회신을 같은 날 오후 보내왔다고 밝혔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방북 특사단이 정상회담 의제와 일정을 큰틀에서 윤곽을 잡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9월 중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더욱 유력해졌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날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문 가운데 특사단이 가서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의 입장을 들어보고 현재 진행상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화 동력 확보라는 환경 조성 차원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사가 큰 틀에서의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협의하고 돌아오면,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준비했을 때처럼 의전·통신과 구체적인 의제에 대한 실무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현재 비핵화 협상이 제자리걸음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북한은 신뢰구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국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강조한다. 그런 차이들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며 "아직까지 완전하게 합의를 못한 측면이 있지만 상대방이 왜 저렇게 주장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했지만 여전히 북미간엔 비핵화 이행 로드맵을 놓고 입장차가 있다"며 " 미국은 자신들의 원칙적인 입장에서 강한 입장을 제기하고 있고, 북한은 협상전술일지 모르겠지만 최대한의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행국면으로 넘어가 한두개씩 주고 받으면서 신뢰가 쌓이면 조금씩 가속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4차 방북을 취소한 것에 대해선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미 삼각관계에 ‘남·북’, ‘북·미’, 그리고 ‘한·미’가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미·중 관계라는 문제가 얽혔다"면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미·중 협력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중 무역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된다면, 문제 해결은 상당히 복잡해진다"고 부연했다.

김 원장은 현재의 북·중 결속 현상은 미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재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불신이 클수록, 장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북한은 북·중 관계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중국의 개입을 우려하는 미국이 결과적으로 북중 관계를 결속시켜준 셈"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지난 25년여간 진행된 북핵 해결 과정을 ‘힘으로 해결하려다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 25년은 힘의 정책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한 역사"라며 "압박이 지속되면 북한이 포기하고 굴복할 것이라고 보지만 실패했다. 북핵 위기 발발 후 수십년동안 그렇게 해왔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종전선언에 대해선 "비핵화의 입구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신뢰 구축 조치로 뭐가 있을까. 마땅한 게 없다"면서 "종전선언은 정치적인 선언에 불과하나 비핵화 입구에서 할 수 있는 상응조치"라고 했다. 그는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정치적 선언의 효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유엔사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이어 "북한 문제 분야에선 미국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며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연락사무소 설치를 놓고 대북 제재 예외 논란이 이는데 대해선 "연락사무소는 빈 협약의 대상"이라며 "외교와 관련해서는 제재 예외로 돼 있기 때문에 법적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해선 "운전자는 길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내비게이터다. 운전자론이라는 게 국제정치학에서 얘기하는 패권 개념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사자로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다만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북·미 관계와 무관하게 남북 관계가 갈 순 없다. 남북, 북미, 한미 관계가 동시에 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3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다음은 김연철 원장과의 인터뷰 전문.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 협의를 위한 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한다. 이번에 파견되는 특사단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번에 가는 특사단은 정상회담 의제와 일정을 큰틀에서 윤곽을 잡는 역할을 할 것이다. 특사단의 성격에 대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특사’라고 명시한 만큼 이에 대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가게 되는 특사단이다. 여기에 대해서도 역할이 있을까.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머문 가운데 특사단이 가서 북측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을 들어보고 현재 진행상황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화 동력 확보라는 환경 조성 차원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사로 누가 가게될까. 특사가 가는 만큼 9월 중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은 더 커진 것 같다.

"그렇다. 9월 중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가 더욱 유력해졌다. 누가 갈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곧 발표하지 않겠나. 이번 특사는 지난 1,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각 분야별로 논의한 사항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점검하고, 핵심 이슈에 대해 합의할 것이다. 특사가 큰 틀에서의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협의하고 돌아오면,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을 준비했을 때처럼 의전·통신과 구체적인 의제에 대한 실무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한미연합훈련을 더 이상 중단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이 발언을 어떻게 봤나.

"매티스 장관이 발언 후에 추가적인 설명을 했는데, 당시 발언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으로 봤다. 협상이 잘 안됐을 때 연합훈련을 재개할 수도 있다는 조건이 붙은 이야기였다. 이와 관련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군사훈련에 큰 돈을 쓸 이유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 및 일본과 즉시 군사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는 발언이 정확한 것 같다."

-청와대는 미 측의 ‘한미연합훈련 재개 가능성’ 발언 이후 ‘협의한 적 없다’고 밝혔다. 상호 협의 없이 이런 발언이 나와도 되나?

"매티스 장관이 말한 것은 원칙적인 입장이었다. 이러한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데 별도의 협의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특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24일(현지시각)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계정을 통해 북한 비핵화 측면에서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며 전날 발표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을 취소했다고 밝혔다./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취소된 것은 어떻게 해석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와 관련해 설명한 게 있다. 그런 부분들은 조금 우려가 된다.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미·중 갈등까지 연결되면 상황이 훨씬 어려워진다.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국제적인 문제임과 동시에 남북 관계라는 특수성이 겹쳐있다.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이 갈등하면 구조가 복잡해진다. 북핵 문제가 처음 발발한지 벌써 25년이 흘렀다.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미 삼각관계에 ‘남·북’, ‘북·미’, 그리고 ‘한·미’가 조율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미·중 관계라는 문제가 얽혔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선 미·중 협력 관계가 구축돼야 한다."
-미·중 갈등이 한반도 문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는데.

"미국과 중국은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대립하더라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선 협력하려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선 중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최근에 와선 우리쪽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 갈등과 한반도 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묶어버렸다. 미중 무역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문제가 논의된다면, 문제 해결은 상당히 복잡해진다."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미국과 가까워져서 비핵화되는 것 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더라도 자신들과 가까운 게 더 좋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고, 의견 차이가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다. 결국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야기한 한반도 질서 변화에 대해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다만 해법을 놓고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중국 내에서 주류인 의견은 무엇인가?

"중국 내엔 대북 정책을 둘러싼 양대 입장이 있다. 하나는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국제파라고 하는 국제적 합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진타오 정권 당시엔 북한과의 전통적인 관계를 복원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국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보고 북·중 경제협력을 진전시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시진핑 정권 들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대북 제재에 강하게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북·중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북중 정상회담에 세 번이나 이뤄진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시진핑 주석이 9·9절에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세 번 방문했다. 이젠 시진핑 주석이 한 번 갈 차례라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 방북 시점을 검토할 때 ‘북한이 가장 원하는 시점’을 제일 중요하게 검토했을 것이다. 북한 입장에선 정권 수립일인 9·9절에 시 주석이 오는 게 제일 좋다. 중국도 북한이 가장 원할 때 방북해야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9·9절에 시 주석이 방북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의 회담장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 DB
-미국이 비핵화 협상 지연 책임을 중국에 돌리는데, 시 주석이 북한을 방문한다는 건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닌가?

"이 문제는 6·12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불거진 바 있다. 그리고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북·미 간에 오해를 풀었다. 김영철이 미국을 방문해 ‘북중 관계는 미국이 생각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미국도 이해를 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다. 그런데 미·중 무역 갈등이 더 심각해지면서, 제재문제를 둘러 싼 입장차가 벌어지고 있다. 북한 비핵화가 한반도 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질서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 중국을 배제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하거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기는 어렵다. 또 제재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불신이 클수록, 장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북한은 북·중 관계 강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 중국의 개입을 우려하는 미국이 결과적으로 북중 관계를 결속시켜준 셈이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 유엔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준수할 것이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이고 합의사항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어떻게 운용할 지에 대해선 북·중 관계에 따라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북·중 국경에는 철조망이 아니라 좁은 강만 있다. 또 북중관계가 중국 동북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도 크다. 이를 염두에 두고 제재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미·북 대화채널은 가동되고 있다고 보나.

"지금은 서로의 의견차를 줄여 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은 각각 우선 순위의 차이를 드러냈다. 북한은 신뢰구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국은 비핵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강조했다. 그런 차이들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교착상태가 지속됐다. 최근에 와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고, 실무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완전하게 합의를 못한 측면이 있지만 상대방이 왜 저렇게 주장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결국 종전선언을 해줄 것으로 보나.

"미국이 지금까지 종전선언을 주저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법률과 종전선언이 서로 충돌하진 않는지 법률적 검토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것과 종전선언을 하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지 법률적으로 검토하는 일 등을 말한다. 두 번째는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검토한 것 같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이게 한미동맹과 유엔사를 와해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정치적 선언의 효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유엔사를 해체할 필요는 없다. 일단 공조하면서 기능과 역할을 점진적·단계적으로 조정하면 된다. 적대적인 법률도 마찬가지다.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법률 효력이 바로 상실되진 않는다. 현 시점은 비핵화 과정 초기로 과거의 적대적인 관계와 앞으로의 협력적 관계가 섞여있는 과도기적 상황이다. 이 상황에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법률적인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판문점 북측 김일성 주석 친필비 앞으로 북한 군인이 지나가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유엔사를 해체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북한도 같은 생각일까?

"북핵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냉전 구조의 산물이다. 지금의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핵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북핵 문제는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에선 대북 압박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압박이 지속되면 북한이 포기하고 굴복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건 실패한 정책이다. 북핵 위기 발발 후 수십년동안 그렇게 해왔지만 효과가 없었다.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제시하느냐의 문제다.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도 드러났지만, 결국 중요한 건 북한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다. 안전보장의 내용은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한 문제다. 비핵화의 입구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신뢰 구축 조치로 뭐가 있을까? 마땅한 게 없다. 종전선언은 정치적인 선언에 불과하나 비핵화 입구에서 할 수 있는 상응조치다. 한미동맹은 북핵과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미동맹에 대해선 북한도 어느 정도 양해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는 비현실적이다."

-한미동맹은 북핵과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했지만, 6·12 미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선의를 보여준 행동이 한미 연합훈련 유예다. 비핵화와 한미동맹이 묶여가는 양상인데 마냥 별개라고 볼 수 있나.

"한미동맹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차이가 있다. 한미동맹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질서 변화에서 한·미 양국이 이 지역 질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돼 있다. 보수 쪽에서는 한미동맹을 ‘억지’ 차원에서만 바라본다. 하지만 미국도 한미 동맹의 목적과 위상, 역할을 꼭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때 젤리코 보고서(미국의 북핵전략이 담긴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아주 장기적으로 한반도 통일이 되거나 동북아에서 다자간 협력이 이뤄졌을 때, 한미동맹이 지역 안정자와 정세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북핵 문제는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협상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1993년 초 북한이 NPT를 탈퇴했을 때를 북핵 위기 시작으로 본다면, 그로부터 25년이 흐르는 동안의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다. 지난 25년은 힘의 정책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다 실패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합의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동안은 협상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고 계속 삐그덕거렸다. 2005년에도 공동선언을 채택했지만 바로 금융 제재가 진행됐다. 25년 역사 중에서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본 것은 딱 2년밖에 안된다. 나머지는 다 압박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압박과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고 지적했지만, 보수 진영에선 중간중간 협상 국면으로 인해 대북 압박이 중단되면서 지속성이 끊긴 점을 지적한다.

"전체적인 북핵 협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견해가 다를 순 있다. 하지만 난 지난 25년을 힘으로 누르려다 실패한 역사로 본다."

판문점 선언 후속조치로 육군 9사단 교하중대 교하 소초 장병들이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 통제구역내 설치된 고정형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북한이 초기부터 일종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상응 조치가 중요하다. 일종의 ‘되돌릴 수 없는 수준’에 신속하게 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저울 한쪽에 비핵화, 다른 한쪽에 안전보장이 있다고 해보자. 미국에선 비핵화 과정 초기에 기존에 개발한 핵무기를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핵무기를 저울에 올려놓는 것 자체를 북한이 거부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북한은 그만한 무게를 가진 카드를 안전보장 차원에서 얹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안전보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안전보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실무적으로 보면 미국 내부적으로 법적 절차가 있다. 여기엔 행정부와 의회와의 관계도 있을뿐더러 굉장히 복잡하다. 결국 안전보장이라는 것은 북미든 남북이든 관계가 달라져야 이뤄질 수 있다. 이건 매우 장기간의 과정이다. 어찌됐든 초기 국면에 상호 우선적인 위협을 해소할 필요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입장에서 위협을 해소하는 방식은 북한의 핵무기와 운반수단의 기술적인 동결부터 시작해서 이를 북한이 포기하고 이전시키는 방법일거다. 비핵화는 장기 프로세스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트럼프 행정부 임기 내에 우선적인 안보 위협을 해소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서 그것부터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했을 때 상호 조치로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지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 미국은 비핵화 초기 조치로 핵리스트라도 먼저 제출하라고 한다. 북한은 계속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핵리스트 제출과 종전선언을 저울에 같이 올릴 수 있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했지만 북미간엔 이행 로드맵을 놓고 입장차가 여전하다. 미국은 자신들의 원칙에 따라 강한 입장을 제기하고 있고, 북한은 협상전술일지 모르겠지만 최대한의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가 협상을 통해 접점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실제 이행국면으로 넘어가 한두개씩 주고 받으면서 신뢰가 쌓이면 조금씩 가속화할 것이다. 앞서 저울을 언급했지만 협상에서 기계적인 균형을 맞출 수는 없다."

-미국은 법적 절차 등이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결정이면 즉각 진행 가능하다. 추후 북한이 미국이 시간을 끈다고 문제 제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 간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북한 문제에 있어선 미국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남북관계에서 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 지금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한·미 간 인식차가 강조되는 듯 하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다. 한미 양국이 갖고 있는 공통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시간 동안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를 보자고 하는 점에선 일치한다. 또 어떤 수단을 통해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속화시킬 것인지를 두고 수단의 우선 순위도 일치한다. 다만 공통의 이해 관계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된다. 한·미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달라서 다소 입장 차이가 있어도 이를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네트워크가 다양하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3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윤희훈 기자
-한·미 공조를 말했는데, 현재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에 대해 미 측은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남북연락사무소 문제를 어떻게 보나?

"개성에 설치하기로 한 연락사무소는 빈 협약의 대상이다. 외교적인 분야와 관련해서는 제재 예외로 돼 있기 때문에 법적인 제재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세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취소됐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고려해 연락사무소 개소 일정을 결정해야 한다."

-미북 협상이 교착에 머무는 가운데 남북은 어떤 사업을 추진할 수 있나?

"제재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게 꽤 많다.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현안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공감도 있다. 군사적 신뢰구축도 그렇다.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분들 유해 발굴을 하기로 남북간 원칙적으로라도 합의했는데 이 부분도 중요하다. 지뢰 제거나 DMZ에서의 긴장완화 방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급하게 긴장을 완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국방 분야에서 우리는 그대로 있는데 북한에만 양보하라고 하면 되겠나. 신뢰구축은 일방적인 게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업들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부속합의서에서 약속한 사항들이다. 이런 상황에선 남북 간 신뢰구축이 중요하다. 서해 상에서의 평화협력 역시 중요하다. 군사적으로 긴장이 완화되면 우리의 이익도 적지 않다."

-군 교범과 정신전력 교재에서 ‘북한군은 주적’이라는 표현을 빼는 것을 두고도 논란이 있다.

"주적 논쟁은 이제는 불필요한 문제라고 본다. 만약 주적이 있다면 부수적인 적은 뭐냐는 문제도 있다. 안보는 상황 변화에 따라 조정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안보는 균형있는 시각으로 봐야 한다. 주적이라는 표현을 뺀다고 해서 우리가 국방정책을 확 바꾸는 것은 아니지 않나."

2018년 8월 7일 경북 포항신항 제7부두에서 지난해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밀반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화물선 ‘진룽호’가 싣고 온 석탄 더미를 삽차가 퍼올리고 있다. / 김동환 기자
-북한산 석탄 국내 반입이 이슈였다. 이와 관련해 SNS를 통해 "제재에 관한 맥락을 이해하면 이렇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경향이 있다. 대북 제재의 역사는 길지만 전략물자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국내법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하나씩 법률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슈가 된 석탄 무역은 특수성이 있다. 석탄을 보고 원산지를 판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공산품은 원산지를 판명하는 기술적 방식이 발달해 있다. 그런데 수산물이나 농산물, 광물 등은 원산지 판정이 어렵다. 유엔 제재 위원회에서도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고, 이러한 의혹에 대해 해당 국가가 접수해서 조사하는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이번 경우는 한국정부가 10개월 동안 수사해서 밝혀낸 성과다. 조사 과정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일을 경험삼아 보완하면 된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밝혀내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은 이런 일에 행정력을 오랫동안 집중해서 투자할만한 일인지를 따지는 것 같다. 우리야 특수한 위치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부각된 것이라고 본다."

-우리 측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선박 억류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거다.

"무역이라는 건 굉장히 복잡한 일이다. 일각에선 북한산 석탄을 의혹 단계에서 압수하거나 거부했어야 했다고 하지만 쉬운일이 아니다. 형식 상 러시아산 석탄으로 돼 있는데 이걸 우리가 충분한 증거 없이 거부할 수 있나. 의심이 간다고 해서 반입할 수 없다고 하면 러시아와의 무역 갈등이 생기게 된다. 엄격하게 수사해서 제재위반이면 처벌해야겠지만 의혹만으로 중단시키는 건 쉽지 않다. 정부가 고려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

-북한산 석탄을 수입한 업체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거론된다.

"굉장히 과도한 이야기다. 일반적인 독자제재도 그렇고, 유엔제재도 그렇고, 처벌에 있어선 업체나 업자가 북한산 석탄이라는 사실을 알았느냐 몰랐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일본 앞바다에서 북한 괴선박이 침투하다가 침몰했다고 치자. 선박을 건져냈더니 일제 엔진이 있었다. 엔진 시리얼 번호를 추적해 판매한 사람을 찾았다고 하자. 그런데 알고보니 이 판매자는 홍콩에 팔았고, 홍콩 판매상이 다시 북한에 팔았다면 과연 일본 판매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 최종 용도를 몰랐다면 처벌하기 어렵다."

-지난 주말로 이산가족 상봉이 종료됐다. 이산 상봉을 볼 때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언제 모든 이산가족 한을 풀 수 있을까’ 의문이 생긴다.

"남북회담의 역사는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와 일치한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만난게 적십자회담이었다. 이산가족 문제는 인도적 문제지만 남북 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다. TV를 통해 보면 너무 안타까운 게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이다. 대한적십자사에 이산 상봉을 신청한 이산 가족이 13만명인데, 이 중 7만5000여명 정도가 돌아가셨다. 모두 고령이다보니 사망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직계가족을 만나는 비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산가족 13만명의 명단을 모두 넘겨서 최소한 생사 확인이라도 전부 해줄 필요가 있다.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만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또 상봉한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상시 상봉 채널도 중요하다. 지금 만나면 더이상 만날 기회가 없는 상황이란 게 너무나 안타깝다. 남북간 서신왕래라도 하면 좋을 것 같다. 그게 더 발전하면 영상통화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5년, 10년 지나서 다 돌아가시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우리도 북한도 이산 상봉 부분에 조금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8월 24일(현지시각)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서 민주평통·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로 '범민족 평화포럼'이 열렸다. /연합뉴스
-올 초 발간한 ‘70년의 대화’에서 종전과 평화정착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한반도 운전자론과 궤를 같이 한다. 현 국면에서 한국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운전자론이라는 것은 누가 운전을 하느냐의 문제다. 운전은 힘이 센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직급이 제일 높은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다. 길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거다. 남북관계는 우리의 삶이고 일상이어서 우리가 제일 많이 고민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내비게이터라고 생각한다. 운전자론이라는 게 국제정치학에서 얘기하는 패권 개념은 아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주변국들이 길에 동참할 수 있게 하느냐는 우리의 외교력에 달렸다. 우리는 당사자로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훨씬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북·미 관계와 무관하게 남북 관계가 갈 수는 없다. 현안들이 모두 얽혀있기 때문에 남북, 북미, 한미 관계 중 어느 하나가 막히면 다른 쪽도 막히게 돼 있다. 세 개가 동시에 통해야 한다."

-최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범민족 평화포럼’에 발제자로 참석했다. 북측에서도 참석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북한 조국통일연구원에 통일 방안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남북은 6·15 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했다. 남북 양쪽 통일방안의 공통점을 체계화하고, 차이를 좁히려는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북측에선 어떤 반응을 보였나?

"거긴 실무진들이라 자기들이 결정은 못한다. ‘상부에 보고하겠다’면서 ‘추후 다시 협의하자’고 했다."

-지난 4월 통일연구원장으로 취임한지 4~5개월이 지났다. 통일 문제 연구에 대한 국내 담론을 어떻게 보나.

"남북 관계는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북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고, 어떤 게 효과적인지 판단해야 한다. 평화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이념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합의가 어렵지만 문제 해결을 놓고 접근하면 많은 부분에서 합의가 수월해진다. 결국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 어떤 게 효과적인지를 따져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당적 협력,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이념적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직도 대북정책을 놓고 갈등이 심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 차이도 심각하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통일 문제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 세대 간 대화도 중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 강원 동해 출신으로 성균관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를 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수석연구원을 지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역임했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를 지냈으며, 지난 4월 통일연구원장에 취임했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참석한 남측 인사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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