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치동 학원가. 저조한 내신 성적 때문에 꿈과 적성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입 수시 원서 접수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능의 좌표가 되는 9월 5일 평가원 모의고사가 끝나면 10일부터 4년제 대학의 수시 원서 접수가 닷새에 걸쳐 진행된다. 9월 모의고사는 전국의 재수생과 반수생까지 모두 응시하는 시험이다. 이 성적이 수시 지원 대학 선택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수시 6개 지원 대학에서 한 곳이라도 합격하면 정시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지나친 상향·하향 지원은 피하고 적절히 섞는 전략이 중요하다. 수시에서 다 붙는다 해도 '(정시 성적으로) 더 좋은 데 들어갈 수 있었다'는 후회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시 원서 접수까지 고3들은 '상전'이다. 상전도 그런 상전이 없다. 구석구석 학생부 수정을 하고, 자소서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수능만큼 중요한 모의고사인 9월 평가원 시험이 코앞에 있다. 논술과 적성시험 등을 앞둔 학생들은 학습량이 더 보태진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감기·몸살, 소화불량 같은 병치레를 겪기도 한다.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을 지원하는 학생 중 다수가 '내신'의 벽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대치동 H고의 P군은 철학과 역사, 경제 등 독서량이 상당해 친구들 사이에서 척척박사로 통했다. 하지만 내신 관리를 못 했다. P군도 책 한 권 읽는 시간에 문제 몇 개를 더 풀어야 내신 관리를 할 수 있음을 모르진 않았지만, 등급을 올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이 학생의 특출한 면을 학생부에 성심껏 적어주었다. '끼와 열정은 서울대감이지만 내신이 뒷받침해주지 못해 학종을 포기한다'고 했다. 재수를 각오하고 논술과 정시로 가닥을 잡았다.

자사고생 A군은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갑각류 곤충과 파충류, 심해어 등을 키우고 있어 관련 분야 지식이 준(準)전문가급이다. 학교에서 A급 평가를 받은 보고서와 논문도 많았다. 당장 대학 강의실에 앉혀도 무리가 없을 만큼 자신이 전공하고자 하는 융합과학의 열정과 재능이 뛰어났다. 문제는 내신이었다. 내신 성적에 맞춰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로 바꾸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내신 한두 개 등급과 꿈을 맞바꾸는 셈이다. 상대평가 내신으로는 학종에서 많은 부분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꿔 점수 스트레스를 줄여주면 학종의 본래 취지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다.

2022년 대입제도 개편을 두고 수능과 학종의 줄다리기가 만만치 않다. 교육부 장관은 교체됐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 하는 철학의 실종이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익만을 따르는 사람 10만 명과 맞먹는다'고 했다. 우리 당국은 어떤 교육정책 철학을 가지고 있나. 수백억원을 들여 구축했다가 2018년에 폐지된 에듀팟(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등 그동안 재정만 축내고 사라진 정책이 많다. 철학의 부재 때문이다. 이 불명예스러운 리스트에 지금 교육부가 말하는 학종, 혁신학교, 고교학점제 등이 부디 오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