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환자를 놓고도 의사마다 전공에 따라 해결책이 갈린다.

병원에서 하는 회의 중에 '콘퍼런스' 혹은 집담회라는 게 있다. 환자의 치료 방침을 상의하고, 수련 중인 전공의를 교육하는 시간이다. 대부분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더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정형외과 내부에서도 세부 전공에 따라서 의견이 달라서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무릎 관절염 환자에 대해서 관절경 수술, 절골술, 인공 관절 수술 중에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는 의사마다 다를 수 있다. 심지어 수술을 하느냐, 안 하느냐부터 생각이 다른 경우도 많다. 자기 생각과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상대방에 대해서 못마땅한 표현을 하여 괜히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외상 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골절 및 인대 손상이 같이 있는 환자의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도 사진상 직접 보이는 골절을 주로 생각하는 의사와 직접 보이지는 않는 인대를 주로 생각하는 의사는 머릿속에서 다른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당장 급한 골절을 치료하는 의사에 대해서 인대 재건을 다루는 의사는 좀 아쉬운 생각을 갖기도 한다. 단적으로 쇠판이나 나사 등 고정물이 조금이라도 인대 손상을 덜 주는 방향으로 장착되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맞고 다른 쪽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내세우리라.

전공의 시절, 내분비내과를 전공하는 친구와 각자 자신의 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우쭐했다. 정형외과에서 하는 수술 등 각종 치료와 처치를 이야기하면서, 내심 '너희 내과는 이렇게 흥미로운 게 없어서 참 심심하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반박했다. '환자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지만, 그 몸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생화학적 반응과 생명 현상을 생각하면 정말로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하다'라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수필 중에 '모자 철학' 이야기가 있다. 꽤 유명하고 자존심이 있었던 수필가가 모자 가게를 방문했다. 주인은 그의 머리 사이즈를 재보고는 '선생의 머리는 보통입니다'라고 했다. 주인은 머리가 큰 사람이 똑똑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수필가는 주인이 자신을 얕잡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싸우자고 덤비지는 않았다. 그리고 재단사, 제화공, 치과 의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편견으로 물든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는 수필을 남겼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자기 자신과 같은 관점, 또는 상징체계를 가진 사람과는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과는 아무리 대화를 나누어도, 서로의 차이점만 확인할 뿐이다. 대화는 상대방의 상징체계를 인정하거나, 최소한 어떤 것인지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

물고기가 새를 모른다고 창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창공을 모르는 물고기가 어리석을까. 대양 속에도 창공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세계가 있다. 하지만 물고기가 새와 대화를 하려면 최소한 창공과 대양을 인정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전공이 다른 의사들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