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만 해도 기술을 갖고 해외로 떠나려 했습니다. 지난 2년간 규제에 막혀 아무것도 못 했지만 앞으로 회사를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의료 기기 회사로 키우겠습니다."

세계 최초 기술을 적용한 의료 기기를 만들고도 규제에 막혀 지난 2년간 단 한 개의 제품도 팔지 못한 중소 의료 기기 제조업체 메인텍.

지난 13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메인텍이 만든 의약품 주입 펌프 '애니퓨전'을 기존 펌프와는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인정하고 별도 보험 수가를 책정했다. 700원대 기존 수가는 제조 원가에도 못 미쳐 제품 출시가 불가능했지만 이번에 개당 2만5000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오는 10월 보건복지부 고시가 나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지난 22일 경기도 안양 메인텍 본사에서 만난 이상빈(58) 대표는 "일본 올림푸스는 내시경 렌즈 원천 기술 하나로 연 7조원을 번다"며 "우리 고유 기술로 연 9조원 규모 의약품 펌프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말했다.

이상빈 메인텍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의약품 주입 펌프 ‘애니퓨전’ 옆에서 웃고 있다. 이 대표가 들고 있는 실린더 카트리지(동그란 부품)가 펌프 오작동을 막는 핵심 기술이다.

애니퓨전은 매년 전 세계에서 의료 사고 5만건을 내는 기존 의약품 주입 펌프의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의약품 주입 펌프는 영·유아나 중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할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펌프에 삽입하는 주사기에 다시 약물을 보충하거나 주사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오염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도 주사용 약물을 나눠 쓰는 과정에서 일어난 외부 감염이 원인이었다. 이 대표는 용량이 적은 주사기 대신 대용량 약물 주머니를 직접 펌프에 연결하고 그 중간에 주입량을 조절할 수 있는 원형 실린더 카트리지를 부착한 애니퓨전을 개발했다. 카트리지가 회전하면서 약물을 빨아들이고 밀어내는 작업을 반복하는 식이다. 그는 "약품 주입 오차율을 기존 ±20%에서 ±2%까지 줄인 제품"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분당서울대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가천의대길병원 등의 임상 시험 결과, 기존 펌프보다 약물 주입량이 정확하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하지만 2016년 식약처는 핵심 기술인 카트리지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판매 허가를 내줬다. 메인텍의 카트리지는 기존 의료 기기 품목에 아예 없었던 기기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내 자금난에 빠졌다. 애니퓨전 개발비로만 40억원을 썼는데, 링거용 수액 조절기 수출로 연간 3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는 버티기 힘들었다. 세간의 기대와 달리 신제품 출시가 미뤄지자 수출 계약을 타진했던 해외 바이어들도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받은 10억원 대출도 올해 만기가 돌아왔다. 이 대표는 "대출을 돌려막고 아들과 딸 이름으로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들며 버텼다"며 "국무총리상, 대통령상까지 받았지만 다 부질없어 특허를 들고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말했다.

심평원의 승인으로 연내 제품 출시를 앞두고 있는 이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이란·인도 등과 체결한 수출 계약이 1000억원에 달하지만 국내 허가가 늦어지면서 실제 수출은 지지부진했다"면서 "앞으로 본격적인 수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기도 화성에 제조 시설을 건립하고 향후 3년간 2000억원을 투자해 500명을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스마트폰·반도체 분야 최고가 됐지만 원천 기술 없이는 10년, 20년을 내다볼 수 없다"며 "이 산업 구조를 바꾸고 의료 기기로 세계시장에 도전하는 벤처들의 멘토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