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30시간 날아가 만난 남미 最古도시… 낯선 이가 건넨 '테레레'처럼 깊고 투박한 맛에 빠져든다

입력 2018.08.31 03:00

[파라과이]

‘과라니’ 문화 남아있어… 스페인 식민 영향 덜 받아 원주민 언어·문화 보존
예수회 선교단 마을… 스페인軍·노예상으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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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파라과이의 대표 관광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예수회 유적지. 스페인 선교사들과 과라니가 함께 어울려 살았던 마을이다. 고지대에 있는 초원에 지어져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②수도 아순시온에 있는 파라과이 독립기념관·박물관의 뒷문 통로다. 스페인이 통치할 때 독립운동을 논의했던 곳으로, 독립운동가들이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용했다고 한다. ③파라과이에서 지역을 이동할 땐 끝이 보이지 않는 2차로 도로를 내달린다./게티이미지코리아·표태준 기자
"이걸 마시라고요?"

파라과이 여행 첫날 현지인 가이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료를 건넸다. 물 위에 찌꺼기들이 둥둥 떠 있고, 심지어 자신이 입을 댔던 빨대를 그대로 쓰라고 줬다. 문화 충격에 얼굴이 사색이 되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테레레를 나눠 마시지 않으면 파라과이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어요!"

구정물처럼 생긴 음료 정체는 '테레레(Terere)'라 불리는 파라과이 전통 차였다. 남미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마테차에 각종 약재를 섞어 차갑게 먹는 음료다. 파라과이에 가면 사람들이 저마다 머리통만 한 크기의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텔모'라 불리는 테레레를 담는 통이다. 이들은 어딜 가든 이 통과 컵 그리고 거름망이 있는 쇠 빨대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테레레를 마신다. 컵과 빨대 단 하나를 이용해 믿을 수 있는 가족, 친구끼리 돌려 마시는 게 전통이다.

파라과이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다. 관광 산업을 홍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두바이나 미국 또는 스페인을 경유해 30~40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지구 반대편까지 왔는데 파라과이 맛을 보지 않을 수 없어 용기를 냈다. 빨대에 입을 가져가 테레레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한국 마트에서 파는 차가운 마테차와는 맛이 전혀 다르다. 낯선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마테뿐만 아니라 박하와 각종 약재가 섞여 훨씬 더 쌉쌀하고, 풀 내음이 코를 찌르며 시원하게 가슴을 뻥 뚫는다.

여행을 맛에 비유한다면 파라과이 여행은 낯선 이에게 건네받은 테레레다.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무슨 맛이 날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용기 내 첫발 딛고 나면 투박하고 깊은 맛에 중독된다. 테레레에는 현지인들이 '마테인'이라 부르는 카페인 성분도 잔뜩 들었다. 즐기다 보면 심장이 뛴다.

④하늘에서 바라본 아순시온 전경. ⑤바다가 없는 파라과이는 강 주변에 인공 모래사장을 만들어 해변 분위기를 냈다./표태준 기자
원주민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파라과이

파라과이에서 가장 많이 보고 들은 단어는 '과라니(Guarani)'다. 거리 상점 간판부터 호텔 이름까지 눈만 돌리면 과라니가 적혀 있다. 과자, 음료수 이름도 과라니고, 심지어 화폐 명칭도 과라니다. 이쯤 되면 과라니가 뭔지 모르고선 파라과이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이다. 과라니는 16세기 스페인인이 남미 땅을 밟기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파라과이는 남미에서 과라니 전통이 가장 잘 살아 있는 나라. 내륙에 위치해 남미를 식민 지배한 스페인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았다.

여행객을 놀라게 하는 테레레 돌려 먹는 문화도 과라니 풍습에서 유래했다. 대부분 국민이 과라니어를 사용할 수 있어 파라과이는 스페인어와 함께 과라니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하고 있다. 대개 식민 지배는 억압과 착취의 역사다. 원래 있던 언어와 문화는 지워지고, 원주민은 이민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파라과이에는 이처럼 과라니의 언어와 문화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다른 나라보다 원주민과 이주민 간 다툼이 잦지도 않다. 피부색 다른 이들이 신뢰 관계는 17~18세기 이 땅에 찾아온 예수회 소속 선교사와 과라니들의 우정에서 시작한다.

⑥파라과이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력은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공동 운영하는 이타이푸 댐에서 나온다. ⑦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졌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먼데이 폭포./표태준 기자
과라니와 지상낙원

과라니를 이해하기 위해 향한 곳은 파라과이 이타푸아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파라나 강변의 예수회선교단마을(Jesuit Missions of La Santísima Trinidad de Paraná and Jesús de Tavarangue)이다. 이타푸아주의 도시인 엥카르나시온 주변에 있는 유적지 세 곳을 가리킨다.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 통치할 때 예수회 소속 선교사들이 찾아와 과라니들과 함께 만든 마을이다. 롤랑 조페 감독이 영화 '미션'(1986)에서 예수회 선교사와 과라니의 이야기를 다루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세 곳의 유적지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트리니다드(Trinidad)'다. 1706년 예수회 선교사 두 명이 과라니와 함께 지상낙원을 건설했다. 초기 기독교 원리에 따라 과라니들을 위한 무료 부양소·교육시설·병원 등을 세웠고, 모두가 함께 일하고 공평히 분배하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다. 과라니어를 글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로마 문자를 보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스페인 군대와 노예상으로부터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을 보호해줘 과라니들이 이곳을 천국이라 부르며 몰려들었다. 덕분에 이곳에 살았던 과라니 수만 4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과라니들은 생긴 것도 쓰는 말도 다른 선교사들을 어떻게 믿었을까. 답은 영화 '미션'에도 나온다. 영화에서 주인공 가브리엘 신부(제러미 아이언스)는 과라니와 신뢰를 쌓기 위해 숲 속에서 오보에를 연주한다. 이때 연주한 음악이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곡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실제 예수회 선교사들은 기타나 오보에 같은 악기를 들고 과라니를 찾아가 연주했고, 음악 문화가 없었던 과라니는 이를 '신의 목소리'로 여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파라과이 예수회 유적지 곳곳에는 기타나 피리를 들고 연주하는 천사가 새겨져 있다.

지상낙원이라 불렸던 이곳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1767년 스페인 국왕이 과라니들에게 엄청난 세금과 공물을 강요했고, 선교사들은 과라니들에게 이를 요구할 수 없어 마을을 떠났다. 스페인 군대가 찾아와 과라니를 폭력으로 다스리려 했지만, 대부분 과라니는 문명을 포기하고 숲으로 도망쳤다. 이후 사람이 살지 않는 죽은 도시가 됐지만, 선교사와 과라니가 쌓았던 신뢰는 여전히 파라과이 문화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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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노래를 부를 때는 일절 웃지 않는 것이 과라니 전통이라고 한다. 내내 정색하고 있던 이들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②현지인에게 건네받은 파라과이 전통 음료 테레레.
자연 그대로의 모습 간직한 먼데이 폭포

파라과이는 한국보다 4배 넓은 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관광 인프라는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스페인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파라과이에 첫발을 내딛는 여행객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유적지와 자연경관을 둘러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행기를 타고 파라과이에 도착했다면 아순시온 국제공항에서 차를 렌트하는 것이 좋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에서 넘어오는 이들은 엥카르나시온이나 시우다드델에스테 같은 도시에서 차를 렌트한다.

땅덩이는 넓지만 인구는 약 700만명밖에 되지 않아 도심이 아니라면 차 막힐 일이 거의 없다. 고속도로는 물론 없고, 2차로 도로만 끝없이 펼쳐진다. 도로 옆으로는 아예 끝을 상상할 수 없는 초원이 보인다. 마치 지구의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이 든다. 그래서 과라니들은 사후 세계가 아닌 이곳 어딘가에 천국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아마도 그 천국에 가장 가까운 곳은 파라과이 대표 자연경관 '먼데이 폭포(Satos del Monday)'가 아닐까.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이구아수 폭포가 있어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여행객에게는 더 매력적이다. 유명 폭포 주변은 각종 관광시설이 요란하고, 관광객이 폭포처럼 쏟아져 정신이 없다. 먼데이 폭포는 관광객이 많지 않고, 관광시설도 적고 투박해 자연 그대로의 폭포를 느낄 수 있다. 특히 폭포를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갈 수 있다. 먼데이 폭포 이름은 과라니어로 '빼앗아 가는 물'이라는 뜻. 이 폭포를 건너려던 많은 과라니가 물에 휩쓸려 목숨을 잃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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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순시온에 있는 대통령궁. 건물이 오래돼 현재는 대통령 행사용으로만 쓰인다./표태준 기자
남미의 가장 오래된 도시 아순시온

예수회 유적지와 먼데이 폭포를 여행한다면 '이민자의 도시'라 불리는 엥카르나시온에 묵는 것을 추천한다. 유럽·미국·아시아 등에서 온 이민자 약 20만명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깨끗하고 치안이 좋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파라과이의 여름이 절정인 1월에 카니발 행사가 크게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엥카르나시온에서 북쪽으로 375㎞ 떨어진 곳에 국제공항이 있는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이 있다. 1537년 스페인이 세운 도시로 남미의 도시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인구 수는 약 70만.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진 역사 깊은 건물과 고층빌딩이 뒤섞여 있다.

관광객은 한국으로 치면 종로라 할 수 있는 카테드랄(Catedral) 구역에 많이 머무른다. 대표 관광지인 대통령궁과 의회, 국립은행 그리고 쇼핑몰 등이 모여 있다. 파라과이 역사를 알고 싶다면 파라과이 독립기념관·박물관(Casa de la Independencia Museum)을 들러볼 만하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이 모였던 작은 건물로, 지금은 그때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남미 특유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은 여행객들은 카테드랄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파라과이강 공원을 찾는다. 남미 한가운데 있는 파라과이는 바다가 없어 파라과이강 주변에 모래를 깔아 인공 해변으로 꾸며놓았다. 덕분에 파도가 치지 않아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일가족이 모여 앉아 기타를 연주하고, 연인들은 해변에 앉아 천천히 테레레를 나눠 마신다. 목마른 길거리 '페로(Perro·개)'들만 테레레 마시는 여행객에게 애교를 부리느라 분주할 뿐이다.

세계적 소고기 수출국… 튀김옷 입혀 튀긴 ‘밀라네사’ 별미

파라과이 화폐 과라니는 한국에서 환전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대형 쇼핑몰이나 공공시설에서 달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반 음식점이나 시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 환전소나 쇼핑몰 ATM기에서 환전하는 것이 좋다. 28일 기준 환율은 1달러(1112원)당 약 5765과라니다.

파라과이는 전 국토가 대륙성 아열대 기후다. 남반구에 속해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다. 10월부터 3월까지가 여름으로 기온은 22~42도. 4월부터 9월까지 동계 기온은 3~32도다. 연평균 기온은 22.5도로 따뜻해 보이지만 지역, 시간에 따라 편차가 극심하다. 특히 겨울에는 아침에 반팔을 입었다가 밤이 되면 점퍼를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여러 종류의 옷을 챙기는 것이 좋다.

파라과이는 세계적인 소고기 수출국이다. 덕분에 소고기 스테이크가 싸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방이 많고 연한 소고기를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엔 맞지 않을 수 있다. 대부분 바싹 익혀 나오고, 육질이 질기다. 이럴 땐 ‘밀라네사(milanesa)’를 추천한다. 소고기 또는 닭고기에 튀김옷을 듬뿍 발라 튀긴 음식으로 돈가스와 식감이 비슷하다. 바삭하면서도 육질이 연해 먹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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