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화장도 채식주의… '생선 비늘 립스틱' 바를 순 없죠"

조선일보
  • 최보윤 기자
    입력 2018.08.28 03:00

    "2년 내 모든 화장품 식물성으로"
    美 '아워글래스' 카리사 제인스, 조명 파우더 등 혁신 이끌어

    하루아침에 스타가 뜨고 지는 게 패션계라면 뷰티업계는 그렇지 않다. 스타 창업자와 스타 브랜드를 좀처럼 찾기 힘들다. 이미 프랑스의 로레알, 미국의 에스티로더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수십 개 브랜드를 보유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샤넬, 디올, 지방시 등 패션 브랜드에서 내놓는 메이크업 제품까지 더하면 등용문은 점점 좁아진다.

    2000년대 등장한 화장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인‘아워글래스’의 카리사 제인스
    2000년대 등장한 화장품 가운데 가장 성공한 브랜드 중 하나인‘아워글래스’의 카리사 제인스는“평소 줄리아 로버츠와 틸다 스윈턴을 닮았다는 얘기를 듣는다”며“이게 다 화장발”이라고 웃었다. /김지호 기자
    그런 메이크업 시장에 균열을 일으킨 것이 '아워글래스(Hourglass)'다. 지난 2004년 스물아홉 살 난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카리사 제인스가 내놓은 럭셔리 색조 브랜드다. 제인스는 뉴욕 파슨스대에서 패션을 전공한 뒤 색조 화장품인 어반 디케이에서 제품 개발을 하고 프리랜서 뷰티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전부다. 하지만 내놓는 제품마다 뷰티업계 트렌드를 바꿔놓았다.

    지난 5월 국내 정식 론칭한 뒤 최근 한국을 찾은 제인스(45)는 "가격대를 낮추고 마진을 높이려고 싸구려 원료를 쓰거나 주요 원료를 빼버리는 기존 관행에 넌더리가 났다"며 "소비자들이 필요한 게 뭔지 연구해서 제품을 만드니 소비자들이 따라와 줬다"고 말했다.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조명에 따라 빛 반사를 조절하는 파우더, 체온에 닿으면 액상으로 변하는 스틱 파운데이션, 특수 믹싱 기술을 이용한 핸드메이드 블러셔 등이다. LA타임스 등 해외 매체는 그를 '메이크업 기술 혁신가'로 부른다.

    배우 제시카 알바가 애용해 유명한 아워글래스 립스틱을 소개한 해외 매체.
    배우 제시카 알바가 애용해 유명한 아워글래스 립스틱을 소개한 해외 매체. /starving 홈페이지
    무일푼으로 시작해 론칭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별다른 광고를 한 적도 없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먼저 알아봤다. 2010년 팝 가수 마돈나가 그녀의 프라이머를 사용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그 제품은 전 세계에서 1초에 하나씩 팔리는 히트작이 됐다. 이후 제시카 알바, 마고 로비, 앤젤리나 졸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레드카펫에서 애용하면서 인기가 확산됐다. 그는 "내 얼굴도 화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데 나를 변신시킬 정도면 다른 이들에겐 어마어마한 변화를 줬을 것"이라며 웃었다.

    환경보호 문제와 맞물려 최근 화장품 업계에서도 '비건(vegan) 화장품'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아워글래스는 지난해 모든 제품을 2020년까지 100% 비건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해 이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화장품 개발 시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성 원료를 없애는 것이다. 기존 화장품 업계는 유화제를 밀랍(벌집의 재료)이나 양모 분비물에서 추출해 쓰고 립스틱을 비롯한 색조 화장품의 필수 원료인 구아닌은 생선 비늘에서 얻는다. "많은 브랜드에서 '100%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것)'를 외치고 있지만 진정한 비건 화장품을 만들려면 동물성 원료도 금지해야 한다"며 "대다수가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창업할 때부터 'No'라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 제품의 90% 이상이 비건이에요. 물리·화학자, 생태학자들과 전 세계를 다니며 대체 성분을 연구했죠. 마지막 남은 건 절대 대체 불가능하다는 카마인(carmine·연지벌레 암컷에서 얻는 붉은색 염료)인데, 이것 역시 다른 원료로 대체할 겁니다." 비건 화장품을 만들면서 식단도 거의 채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렇지만 한국 불고기는 꼭 먹어 보고 나서 채식주의자 선언할래요(웃음). 돈 생기면 옷 사는 것 대신 늘 화장품을 사던 나였는데, 세계 화장품의 수도라는 서울에 와 보니 여긴 천국이네요. 내가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나 봐요!"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