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뒤로 하고 경제 시찰 강화에 나서고 있다. 최근 두 달간 북한 전역을 돌며 공장 및 농장 30여 곳을 시찰하는 등 전례없는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 경제 일부 도입과 미·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돌파구 마련에 나선 것이라고 27일 분석했다. 또 시장 경제 도입 후 도농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출렁이는 농가 민심을 달래기 위한 정치적 행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 지구를 시찰하면서 우산을 쓰지 않은 채 소나기를 맞으며 당국자에게 지시하는 모습이 지난 17일 공개됐다. 김수길(김정은 오른쪽)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이 시찰에 동행했다.

북한 매체와 통일부 자료 등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공장과 농장 30여 곳을 시찰했다. 그는 군간부들과 함께 평안북도를 시작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북한 전역을 순방한 뒤 평안남도에서 다시 시계 역방향으로 중점 지역을 시찰하고 있다. 방문 지역은 관광 개발단지부터 화장품 공장, 섬유 공장, 온실 농장, 메기 양식장 등 다양하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17일 김정은 위원장이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 지구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당간부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모습을 크게 보도했다. 또 그가 21일 방문한 묘향산 의료기구 공장을 방문해 "(관리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다"고 엄하게 질타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경제 시찰 강행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최근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 경제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발벗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북한의 실질 경제 성장률은 전년 대비 마이너스 3.5%로 하락하는 등 침체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대북제재 해제를 끌어내 북한 경제의 숨통을 트이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근 비핵화 협상이 교착되고, 미국이 추가 대북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을 떠안게 됐다.

시장경제 도입 후 도농간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서 농가 민심이 출렁이고 있는 것도 김정은 위원장이 발벗고 나선 요인이다. 그는 2012년 최고 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은 후 신흥 부유층이 국영기업의 시설이나 토지를 빌려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등 시장 경제를 일부 허용했다.

평양 시내에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그러나 평양 내 택시 수가 급증하고 스마트폰 어플을 사용해 음식을 주문하는 최첨단 거래 방식도 이뤄지고 있지만 이는 도시의 소수 주민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활성화되고 있는 부동산 건설 및 투자 수익도 소수 부유층의 몫이다.

이에 비해 농가 민생은 악화되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 쌀 생산량은 140만t으로 전년 대비 30만t 감소했다. 식량 배급이 밀려 다수 주민이 하루살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농업시설 노후화와 당 간부들의 부패도 심각한 문제다.

니혼게이자이는 "6월 말 이후 김정은의 시찰 지역은 농·수산계열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며 "빈부 격차와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