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남성 화장품 시장
"나도 K-팝 스타처럼…" 화장 연령 낮아지고 표현 더 섬세해져
프랑스 명품 샤넬이 다음 달 1일 남성 전용 색조 화장품을 출시한다. 샤넬이 남성 향수와 기초 화장품 외에 색조 화장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이 드 샤넬(BOY DE CHANEL)’이라 명명된 남성용 화장품은 피부 표현을 위한 파운데이션과 입술을 부드럽게 하는 립밤, 눈썹 화장을 위한 아이브로우 펜슬로 구성됐다. 샤넬 측은 "아름다움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문제"라고 출시 이유를 밝혔다.
샤넬은 남성용 화장품의 첫 판매국으로 한국을 택했다. 9월 1일 한국에 출시해 시험 판매를 하고 11월에 온라인 홈페이지, 내년 1월엔 전 세계 샤넬 매장으로 판매처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 아시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 이동욱을 모델로 선정했다.
◇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남성 화장품 시장
샤넬은 왜 한국의 남성에 주목한 걸까? 한국은 전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1년 8784억원에서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성장했다. 2020년이면 1조4000억원 규모로 커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를 반영해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은 최근 한국의 그루밍(Groming·외모를 치장하는 남성)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기도 했다.
유교 문화가 존재하는 한국이 세계 남성 화장품의 중심이 된 데는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등장하면서다. 극심한 취업난과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화장을 하게 됐다는 것. 대기업에 다니는 이동호 씨(32)는 "비비크림으로 모공이나 요철을 감추고, 눈썹만 정리해도 훨씬 인상이 좋아진다"고 했다.
K팝을 위시한 한류 열풍도 주효했다. 20대 팝 아이돌, 이른바 ‘꽃미남’ 스타들이 인기를 끌면서 남성 화장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서양에서 화장하는 남자 하면 여자의 옷차림이나 행동을 즐기는 드랙퀸(Drag queen)이나 동성애자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한국의 화장하는 남자 아이돌은 달랐다. 이들은 깨끗한 피부와 그윽한 눈매, 부드럽고 섬세한 감성을 지녔지만, 무대에선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군무를 선보였다. "남자가 화장을 했어?"라며 반감을 갖던 사람들도 ‘아름답고 당당한 남자’로서 화장하는 남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K-pop Male Makeup’을 검색하면 15만 건에 가까운 동영상이 검색된다. 대부분 한국 남자 아이돌의 화장을 따라 하거나 화장법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해외 패션·뷰티 잡지에서도 한국 팝스타들의 피부 관리법과 화장법을 다룬 기사를 쉽게 볼 수 있다. 여성 체험자가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의 화장법을 분석해 흉내 내기도 한다.
◇ 화장은 아름답고 당당한 남성성의 표현
김경자 카톨릭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와 개성을 강조하는 사회로 변하면서 남성다움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전에 화장하는 남자는 30~40대 경제력이 있는 남성들을 중심으로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를 일컬었다. 일명 그루밍족으로, 외모를 경쟁력이라 여기는 남자들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은 세안제와 일체형 로션 등으로 한정됐다.
하지만 10~20대가 주축이 된 최근의 화장하는 남자는 자신의 피부톤에 맞춰 화장품을 고르고 눈썹을 관리하는 식으로 더 섬세해졌다.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등장이 화장술을 발전시켰다. 피부 표현만 해도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컨실러를 이용해 눈 밑과 콧등에 하이라이트를 주는 수준으로 진화했다. 헬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에 따르면 올 상반기 남성 고객이 많이 구매한 화장품으로 아이라이너, 눈썹 정리 기기, 쿠션, 유색 립밤 등이 선정됐다. "남성용 화장품은 색상이 한정돼 있고, 성분도 독해 여성용 화장품을 쓴다"는 남자들도 많다.
화장하는 남자가 늘었다지만, 막상 주변에서 화장하는 남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체감이 안 되는 이유는 아직 화장하는 걸 드러내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한 티를 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화장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유튜브 튜토리얼만 봐도 ‘연한 메이크업’, ‘티 안 나는 메이크업’ 등으로 키워드가 집중된다.
피부 컴플렉스가 있어 화장을 시작했다는 김정현 씨(27)는 "아직은 숨어서 화장을 한다"며 "파운데이션 색을 잘못 사용해 얼굴과 목의 피부색이 달라지거나, 들뜨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