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비핵화 무성의로 폼페이오 방북 취소, 기회의 문 걷어차나

조선일보
입력 2018.08.27 03:20

트럼프 미 대통령이 24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다음 주 방북 계획을 취소시켰다. 폼페이오 장관이 새로 임명한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함께 북한에 간다고 기자회견을 가진 지 하루 만이다. 그만큼 뜻밖의 사태 반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 볼턴 안보 보좌관, 켈리 비서실장과 대책회의를 가진 뒤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그 이유를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금 상태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네 번째 방북에 나섰다가는 앞서 세 차례와 마찬가지로 빈손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우리의 무역 입장이 강해진 뒤 중국이 이전만큼 북의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지 않다"면서 "폼페이오 장관의 다음 방북은 중국과의 무역 문제가 해결된 뒤 가까운 장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북한과의 국경 단속을 헐겁게 풀어주면서 대북 압박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 이행을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고 미국은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먼저 일단락 지은 뒤 북한과의 협상을 재개하기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8월 폼페이오 방북 → 9월 3차 남북 정상회담 → 2차 미·북 정상회담 순서를 밟으며 북의 비핵화가 급진전될 것이라던 기대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린 것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제 와서 판을 깰 수는 없을 거라고 믿고 배짱을 부리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쓸모가 없어진 핵실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는 시늉을 하고 핵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미군 유해 송환을 한 것이 엄청난 양보나 되는 양 생색을 내면서 이제는 미국이 종전 선언을 할 차례라고 뻗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의 비핵화를 자신의 업적으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내거나 그런 것처럼 포장해서 11월 중간선거에 써먹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지금처럼 비핵화 알맹이를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도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지금의 미·북 협상 전개에 대한 미국 내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폼페이오 장관 방북 취소에 대해 미 의회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잘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런 분위기 때문이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지금처럼 막 나가면 미·북 관계가 순식간에 싱가포르 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미·북 협상에 제동이 걸리면 남북 관계도 속도를 낼 수 없다. 정부가 이달 안에 개소식을 가지려던 개성 연락사무소에 대해 미국은 유엔 제재 위반이라는 경고를 공개적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마당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마저 취소됐으니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도 북한 경제의 숨통을 틔워줄 어떤 약속도 하기 힘들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무성의한 태도는 북 주민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줄 기회의 문을 걷어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취소된 상황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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