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김택영·황현… 19세기 후반 조선 시단의 풍경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8.25 03:00

    '용등시화'
    용등시화|정만조 지음|안대회·김보성 옮김|성균관대학교 출판부|324쪽|1만9000원

    '큰길로 말이 돌아간다 사졸들이 외칠 때/ 상공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마주하고 계시네/ 밤 깊어 환한 달빛 손에 잡힐 듯 비치고/ 온 하늘의 별들은 궁궐 연못에 쏟아지네.'

    전후 설명이 없다면 그저 평범한 시 같지만 이것은 1894년 7월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해 조선군이 무장해제당한 긴박한 사건 직후 유길준이 쓴 시다. 무기력한 조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희귀한 기록이 등장하는 유일한 자료가 바로 '용등시화(榕燈詩話)'다.

    '용등시화'의 존재는 진작부터 알려졌으나 내용을 알 수 없어 오랫동안 '사라진 저술'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 뜻밖에도 매일신보에 연재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자료를 발굴하고 번역한 역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조선 말기 시문학의 흐름을 담은 독보적인 저작"이라고 말한다. 저자 정만조(1858 ~1936)가 나중에 친일로 돌아선 것과는 분리해 19세기 후반 조선 시단을 정리한 유일한 사료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배지에서 저술된 이 책은 강위·이중하·김택영·황현 같은 주요 작가, 흥선대원군·김홍집·김옥균 등 정계 인물의 작품과 일화를 보여주는데, 대부분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다. 또한 고종 시대 시단을 대표하는 소론 문인 중심 남사(南社)의 활동을 풍성하게 소개한다. 많은 부분이 저자의 직접 체험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가치를 더하며, 거의 존재가 묻혀 버렸던 여항시인과 지방 문인의 작품을 부각시켰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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