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사라진 부부 상봉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8.08.21 03:16

    "그래 니, 자전거 사왔나?" 남쪽 아내가 북쪽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2000년 1차 이산가족 상봉 때 50년 만에 만난 부부였다. 남편이 피란 길에 쓸 자전거를 구한다고 집을 나간 뒤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다. 아내는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남편은 "미안하오. 면목이 없소"라며 눈물만 흘렸다. 아내는 "괘씸하긴 한데, 그래도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부부는 금세 얼굴을 비비며 정을 나눴다. 헤어질 때 아내는 "만나자마자 또 이별"이라며 통곡했다. 이산가족 중에 50~60년 쌓인 '그리움'과 '원망'이 한데 엉키는 게 부부 상봉이다.

    ▶부부 재회는 첫 장면이 다소 어색할 수 있다. 부모 자식이나 형제·자매는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울부짖지만 부부는 손을 잡는 것도 조심스럽다. 특히 한쪽만 재혼했다면 처음에는 냉기가 돌기도 한다. 남쪽이나 북쪽이나 남편은 새 가정을 꾸리지만 아내는 혼자 몸으로 시부모와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많다. 재혼한 남편이 '새 아내'를 데리고 나와 '옛 아내'를 만난 적도 있었다. 재가하지 않은 아내는 남편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새 아내가 상봉장을 떠난 뒤에야 50년 한(恨)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떤 아내는 남편 재혼 소식에 "고향 떠날 때부터 애인이 있었던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 

    [만물상] 사라진 부부 상봉
    ▶그래도 하루만 지나면 부부 모습은 달라진다. 자식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뿌리처럼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서로 쓰다듬기도 한다. 봉숭아 물을 들인 주름진 손가락을 펴며 "당신 보여주려고…"라고 한 아내도 있었다. 남편은 평생 걸었던 금목걸이를 녹여 만든 금반지를 아내 손에 끼워줬다. 다시 이별의 시간이 오자 "여보, 내가 당신을 또 버리게 됐소"라며 가슴 치던 할아버지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2000년 상봉 때는 남측 100명 가운데 15명 정도가 부부 만남이었다. 그러나 어제 시작된 21차 상봉 행사에선 부부가 한 쌍도 없었다. 부부 상봉이 없는 이산가족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6·25 때 스무 살이었다면 올해 여든여덟이다. 부부 상봉은 갈수록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까지 상봉을 신청한 이산가족 13만2603명 중 7만5741명이 벌써 세상을 떴다. 생존해 있는 5만6862명 중 62.6%가 80대 고령이고 매년 4000명 넘게 운명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부부 상봉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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