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홍대몰카범' 여자라서 실형" 주장은 틀렸다

입력 2018.08.15 16:00 | 수정 2018.08.15 16:20

“피고가 여성이라 실형 선고를 받았다” “남자는 몰카 찍어도 집행유예 나온다”

지난 13일, 몰래카메라(몰카) 범죄를 저지른 초범 3명이 각각 1심 판결을 받았다. 결과는 실형과 선고유예, 집행유예로 각각 달랐다. ①홍대 누드 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를 찍어 남성 혐오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Womad)’에 유포한 여성모델 안모(25)씨는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②몰카를 찍어 인터넷에 유포한 20대 남성 1은 선고유예를, ③몰카를 찍어 웹하드에 저장한 20대 남성 2는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받았다.

결국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여성은 실형을 살게 됐고, 남성들은 일반인과 똑같이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만 두고 보면, “여자라서 당했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조선DB
과연 사법부는 성별에 따른 ‘편파 판결’을 내리고 있을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홍대 몰카범 안씨와 같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카메라 등 이용 촬영)’로 재판받은 남성들의 사례를 찾아 비교 분석해봤다. 최대한 비슷한 사례를 찾기 위해 안씨와 같은 초범만 대상으로 했다.

◇남성 나체 사진 유포한 20대 여성의 경우
홍대 몰카사건으로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여성모델 안씨에겐 ‘불리한 정황’이 많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이은희 판사는 “안씨는 몰래 촬영한 것을 넘어 남성 혐오 사이트에 얼굴을 드러나게 해 심각한 확대재생산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안씨가 얼굴·성기가 노출된 피해자 사진을 직접 촬영·유포한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취지다.

적극적으로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안씨는 범행 직후 사진을 촬영한 휴대폰을 한강에 던지고 경찰에 다른 휴대폰을 제출했다. 워마드 관리자에게 자신의 IP주소와 로그기록, 활동 내역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안씨는 또 7차례 걸쳐 피해자에게 사과 편지를 보냈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 판사는 “사회적 고립감과 우울감 등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가 안씨의 처벌을 원해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남성 모델의 나체 사진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모델 안모(25)씨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지난 5월 12일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 서부지법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여자친구 사진 찍어 유포한 남성 1, 2의 경우
같은 날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를 받은 20대 남성들은 죄질은 나쁘지만, 안씨와 달리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합의했다는 점이 참작됐다.

여자친구의 나체사진을 찍어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에 올린 20대 남성 1(29)에 대해 법원은 200만원의 벌금형 선고를 유예했다. 부산지법 형사10단독 장기석 판사는 “사진에 등쪽이 찍혔고, 어둡고 흐릿해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다”며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10회 이상 탄원서를 제출해 선처를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사진이 유포됐지만 피해자 신원을 특정할 수 없고, 연인인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여자친구의 나체사진과 성관계 장면을 총 38차례에 걸쳐 불법 촬영하고 웹하드에 보관한 남성 2(20)는 이날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을 내린 제주지법 형사4단독 한정석 부장판사는 “피해자와 합의한 점, 촬영한 사진을 외부에 유포하지 않은 점, 고소 이후 피해자와 몇개월간 다시 교제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했다.

◇실형 받은 남성 몰카범들… 증거인멸·합의실패 등 안씨와 유사해
‘몰카’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어땠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①얼굴과 성기가 드러나 ‘특정인’이라고 알 수 있도록 사진을 찍고 ②여러 사람이 보도록 유포했으며 ③증거인멸을 시도했고 ④피해자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울산지법 형사2단독 이종엽 부장판사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여성을 몰래 촬영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한 A(28)씨에게 징역 5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상가 여자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B(50·여)씨를 옆 칸에서 몰래 촬영하려다 들켜 달아난 후 휴대전화를 초기화해 증거를 인멸했다.

이 판사는 “A씨가 핵심 증거인 휴대전화 데이터를 삭제한 것은 범행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되진 않았지만, 한 번 유포되면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엄벌한다”고 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29개 여성단체 회원들이 10일 낮 12시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음란물 유포에 대한 편파수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윤민혁 기자
증거인멸 시도나 촬영물 유포는 없었지만, 범행 횟수가 많아 죄질이 나쁜 경우도 실형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2016년 9월 직장 동료 몰카를 20여차례 촬영한 C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범행 수법이 매우 대담하고 치밀하지만, 촬영한 동영상이 유포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성관계 영상을 촬영·유포한 자들은 실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우희 판사는 술집에서 만난 D(24·여)씨, 채팅 앱을 통해 알게 된 E(24·여)씨의 나체를 몰래 촬영해 지인에게 전송한 F(31)씨에 대해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사진에 얼굴이 드러나 있어 피해자들은 수치스러운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두려움을 영원히 지니고 살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실제 법원은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경우 더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1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서울 지역 관할 법원의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사건 1심 판결문 1540건을 분석한 결과,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5.3%(82건)로 드문 편이었다.

촬영물이 유포된 66건으로 분석대상을 좁히면 징역형의 비중이 27.3%(18건)로 뛰었다. 그러나 징역형이 27%, 집행유예 선고 무죄 등 나머지가 73%라는 결과에 대해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몰카범에 대해 엄벌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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