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前 정권 특활비만 '적폐'인가

입력 2018.08.15 03:14

선정민 정치부 기자
선정민 정치부 기자
지난 13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회동을 갖고 '특활비 폐지'에 합의했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특활비를 완전히 폐지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국회 관계자는 "연간 특활비 62억원 가운데 교섭단체 원내대표 몫 15억원만 폐지하고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에게 돌아가는 몫은 절반 수준으로 줄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날도 국회의장실에선 '해외 동포들에 대한 금일봉' 등을 예로 들면서 "꼭 필요한 돈은 써야 한다"고 했다. 의장 재량이나 비공개로 써야 하는 경비가 많으니 이런 특활비를 남겨둬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특활비를 줄인 만큼 '업무추진비'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여권 관계자들은 "특활비 대부분은 불투명한 경비가 아니라 상임위와 원내대표실 운영비 등에 쓰이는 돈"이라고 했다. "8000여억원의 정부 부처 특활비에 비하면 국회 특활비는 60억원 정도에 그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특활비 폐지를 이유로 예정됐던 오찬 간담회를 갑자기 취소했다. "특활비 폐지로 오찬 간담회 경비를 댈 수 없어서…"라고 했다. 특활비 폐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비쳤다.

야당과의 공방도 벌어졌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을 구분해서 (특활비 중) 어떤 것은 폐지하고 어떤 것은 축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도 "의장단과 상임위 특활비도 반드시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에선 "자기들이 맡은 상임위원장이 별로 없고 받을 특활비도 적으니 저러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물론 특수활동비가 불가피하게 필요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은 몇 달 전만 해도 박근혜 정부 인사들의 특활비 수수를 '적폐'로 몰았다. 당시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특활비를) 뇌물로 받은 것"이라고 했고, "특활비 상납의 정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직 국정원장 3명과 최경환 의원 등이 구속됐다. 그랬던 여당이 자기들과 관련된 특활비를 없애자고 하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이전 정부 특활비는 적폐이고, 지금 여권이 받는 특활비는 필요 경비라고 우기는 모양새다.

정부 예산 지침에 따르면 특활비는 '정보나 사건 수사,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쓰이는 경비'이다. 수사를 하지 않는 국회가 특활비를 배정한 자체부터 이상하다.

사무실 운영비 등이 필요하다면 업무추진비에 포함시켜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그런 노력 없이 은근슬쩍 특활비를 살리려는 건 이율배반적인 '꼼수 정치'이다. 이래선 여권이 주장해온 '특활비 폐지'의 진정성을 아무도 수긍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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