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스토리] ‘태양풍의 아버지’ 유진 파커…‘인류 최초’ 태양탐사선 이름으로

입력 2018.08.13 16:30 | 수정 2018.08.13 18:34

“3, 2, 1, 0. 발사(Lift Off).”

12일(현지 시각) 오전 3시 31분, 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Parker Solar Probe)’가 발사됐다. 탐사선은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州)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새빨간 불꽃과 굉음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았다. 7년간의 대장정에 오른 이 무인(無人) 태양 탐사선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가깝게 태양에 접근하게 된다. 이번 탐사 프로젝트 이름이 “태양을 만져라(Touch the Sun)”인 이유다.

유진 파커 교수가 2018년 8월 12일 오전 ‘파커 솔라 프로브’의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인버스
이날 누구보다 긴장된 눈빛으로 발사 장면을 지켜본 이가 있었다. 유진 파커(91) 시카고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다. 60년 전 ‘태양풍(태양에서 나오는 고에너지 입자들의 흐름)’의 존재를 밝힌 태양 연구 전문가이자 우주물리학자인 파커 교수는 탐사선이 발사되자 감격스러워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그가 세운 태양 연구 업적을 높이 사, 그의 이름을 탐사선에 붙였다. 생존 인물로는 처음으로 탐사선에 이름을 올린 사람이 된 것이다.

탐사선은 태양 연구 열망이 담긴 파커 교수의 분신(分身)이다. 탐사선에는 파커 교수의 사진과 그의 논문이 담긴 메모리 칩이 탑재됐다. 메모리 칩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지켜보자(Let's see what lies ahead)”는 파커 교수의 메시지도 들어있다. 탐사선은 앞으로 코로나(태양의 맨 바깥쪽 대기층)와 태양풍을 조사하고 산화할 예정이다.

“새로운 물리학 법칙을 발견하기에 우주만큼 좋은 곳은 없습니다.” 파커 교수의 얘기다.

◇ 기차에 관심 많았던 소년, 물리학자의 길을 걷다

1927년 태어난 파커 교수는 어린 시절 미국 뉴욕 버팔로 지역에서 지냈다. 기찻길과 불과 두 블럭 떨어진 곳에서 살았던 그는 자연스레 기차에 빠져들었다. 파커 교수는 증기 기관차가 무슨 원리로 움직이는지, 기차가 어떻게 레일을 바꿔 달리는지 궁금해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파커 교수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은 어린 파커 교수가 궁금해할 때마다 이해하기 쉽게 과학적 현상을 설명해주곤 했다.

어린 파커 교수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다. 그는 세상을 향해 궁금증을 쏟아냈다. 그는 소리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알기 위해 ‘깡통 전화기 실험’을 하기도 했고, 가족과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서 물 분자와 석회암에 관한 호기심을 키웠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현미경으로는 미생물을 공부했다.

태양 무인 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가 2018년 8월 12일 오전에 미국 플로리다주(州)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새빨간 불꽃과 굉음을 내뿜으며 하늘로 치솟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그러나 파커 교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열정적인 학생은 아니었다”고 회상한다고 CNN은 전했다. 그가 학문에 눈을 뜬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는 물리학을 접하면서 학문에 사로잡혔다. 파커 교수는 물리학이 그가 흥미로워하는 모든 것의 기초라고 여겼다. 곧 그는 물리학자였던 할아버지와 삼촌의 길을 따라가고자 마음 먹었다.

파커 교수는 1948년 미시간주립대에서 물리학 학사를 따고, 1951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물리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유타대학에서 물리학 교수로 처음 교편을 잡았다. 1955년부터 시카고대학 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다 20여년 전 은퇴했다.

◇ ‘태양풍’ 존재 밝히면서 태양 연구 업적 세워

파커 교수가 처음부터 태양 연구에서 ‘스타 교수’였던 것은 아니다.

시카고대학 무명 교수였던 그는 1958년 ‘천체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태양에서 전하(물체가 띠고 있는 정전기의 양)를 띤 입자들이 계속 흘러나온다는 논문을 실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논문을 싣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당시 30세였던 파커 교수는 태양풍 개념을 담은 논문을 천체물리학 저널에 제출했지만, 이내 거절당했다고 CNN은 전했다. 논문 검토위원들이 “터무니없는 내용”이라면서 파커 교수의 논문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논문 검토위원들이 태양풍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대부분 과학자가 우주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파커 교수의 논문은 너무나 급진적이었던 셈이다. 인류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시기였지만 아무런 장비를 갖추지 않아 우주 공간을 측정하기란 불가능했다. 파커 교수는 태양풍을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시대적 발상’과 싸워야 했다.

1955년 시카고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의 유진 파커 교수. /CNN
논문을 퇴짜맞은 파커 교수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시카고대학 선배 교수이자 저널 편집자였던 유명 우주물리학자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크하르 박사를 찾아가 “논문 검토위원들이 전제를 못 받아들이는 것이지 논문 오류를 지적한 건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져 태양풍 논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파커 교수의 예상이 맞았다. 논문이 실린 후 4년 후인 1962년, NASA의 금성 탐사선 ‘마리너(Mariner) 2호’를 통해 태양풍의 존재가 확인됐다. 우주 공간에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흐르고 있었다. CNN은 이를 두고 “파커 교수의 업적은 우리가 태양과 우주 행성 간 공간을 이해하는 데에 우리의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꿔놨다”고 평가했다. 파커 교수 자신도 “태양풍을 생각해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인류 최초의 태양 탐사선은 7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돌며 태양과 코로나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조선DB
우주로 나간 파커 탐사선은 파커 교수를 대신해 태양풍이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 언제 태양풍이 강해지는지 밝혀낼 예정이다. NASA는 지구에서 전자파 교란을 일으키는 태양풍을 분석해 인공위성이나 지상에서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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