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떠나는 날엔] [15] "가망 없다"는 말에 생각난 비자금 통장

조선일보
  •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입력 2018.08.10 03:00

    윤무부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동해안에서 울릉도에 이르기까지 산과 들을 다니며 호반새, 벙어리뻐꾸기, 큰유리새 등을 직접 찍은 영상을 60인치 TV에 연결해서 보면 화질이 끝내준다. 새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또 보다 보면 어느덧 새벽 4시. 그때쯤 마누라가 부스스 일어나 말한다. "당신 지금 몇 시인지 안 보여요?" 요즘엔 "당신 머리가 약간 돈 것 아니오?"라며 TV를 꺼버린다. 병상에 있었을 때 대소변을 받아주고 지금도 목욕까지 손수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경희대 생물학과에서 34년 일하고 정년퇴직하자마자 뇌경색이 와서 6개월간 입원했다. 추운 날 강원도 철원 DMZ 부근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다가 증세가 왔다. 언어와 오른쪽 손발이 차례로 마비됐고 나중에는 왼손과 양쪽 다리까지 마비됐다. 정신은 맑았으나 꼼짝 못 하고 듣기만 하며 누워 있던 중, 병실에 의사 세 명이 와서 가족들에게 "가망이 없으니 장례 절차를 준비하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청천벽력이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서재에 있는 'Bird'라는 제목의 원서 149페이지에 비자금 통장이 있고, 그곳에 마누라 몰래 18년간 모은 돈 4300여만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한 달 동안 눈만 뜨면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던 왼손 손가락으로 'Bird'와 '149'라는 글자를 계속 그렸다. 다행히 아들이 그걸 보고 알아채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었다. 그 돈을 못 찾고 그대로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절박했다.

    고향 친구 한 명은 급성뇌경색으로 3시간 만에 운명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 천운이다. 뇌경색 발병 10년이 지난 지금도 오른쪽 손과 다리는 거의 마비 상태지만,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 먹을 수 있게 됐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니 살아있다는 것이 신난다. 새들의 행동도 더욱 활기차고 아름다워 보인다. 흑비둘기, 댕기물떼새, 개꿩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 아마추어 사진가에게서 희귀한 새 사진을 받아보는 것, 길에서 사람들이 악수를 청하고 안아주는 것 모두 더없이 경쾌하다.

    평생 새를 보고 살았으니 죽을 때도 함께하고 싶다. 납골당에 새 사진과 영상, 울음소리 녹음파일을 함께 안치해달라고 할 생각이다. 100년 혹은 수백 년 뒤에 누군가 내 무덤을 열어본다면, 후대 조류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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