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폭염 전기료 인하까지 발목 잡는 脫원전

조선일보
입력 2018.08.10 03:20

여름철 전기요금이 가구당 최대 월 2만원 남짓밖에 인하되지 않는 걸로 발표되자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한 여론조사 회사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처음으로 60% 밑으로 내려간 이유 중의 하나로 이 문제를 들기도 했다. 청와대 회의에서조차 "정책 대응이 국민 눈높이에 안 맞았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며칠 전 문 대통령은 "폭염을 해마다 있을 수 있는 상시적 자연 재난으로 생각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옳은 말이다. 이런 더위에 냉방은 선택일 수 없다. 이제 에어컨은 거의 생활필수품으로 한여름엔 수돗물과 같은 성격으로 봐야 할 지경이다.

대통령 지시까지 있었지만 정부·여당은 핵심인 전기료 누진제 개편은 미루고 당분간 현행 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표면적 이유는 '전기 소비 억제'지만 전체 전기 소비량 중 가정용 비중은 13%에 불과하다. 가정용 전기 사용을 억제한다고 해서 전력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한여름철 일반적 가정의 평균 전기 사용량에 맞춰 누진제를 개편하는 것은 전기 소비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깎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전기 공급자인 한국전력이 더 이상 손실을 감당하기 어렵다. 한전은 탈원전 선언 이후인 작년 4분기 이후 적자로 돌아서 올 연간으로는 1조원 규모의 거액 적자가 예상된다. 발전 단가가 싼 원전 가동을 줄이고 값비싼 석탄·LNG 발전을 늘렸기 때문이다. 탈원전이 진행될수록 적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번 찔끔 인하로만 한전은 2700억원의 추가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더 인하했다가는 경영 부실을 가속화할 수 있다. 주가가 더 하락하고 최악의 경우 외국인 주주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문 대통령 말대로 폭염은 올해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큰 상시 상황이 됐다.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누진 요금제를 손봐야 한다. 최저 구간 대비 최고 구간의 누진율은 우리가 3배에 달해 미국(1.1배)·일본(1.4배) 등보다 높다. 그런데 한전의 적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탈원전이 아니었다면 한전은 지금도 건강한 흑자 기업일 것이다. 이상 기후에 따른 전기요금 인하 여력도 충분했을 것이다. 탈원전이 폭염을 견딜 냉방까지 발목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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