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칼럼] 미군 유해는 돌아오는데 국군 포로는 어찌 되나

조선일보
  •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입력 2018.08.10 03:10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지난달 27일 북한은 6·25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송환했다. 남북 및 미·북 정상회담에 따른 결과였다. 지난 1일 오산 미군기지에서 열린 유해 송환식에서는 예포 21발을 발사해 국가 정상급 예우를 갖췄다.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유해를 직접 맞이했다. 미국은 6·25전쟁 때 실종된 5500여 명의 유해가 북한에 묻혀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1990년부터 북한과 유해 송환 회담을 벌여 지금까지 500여 구의 유해를 돌려받았다. 미국은 전쟁에서 싸우다 포로가 됐거나 실종된 미군을 끝까지 찾아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국가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에서 국군 포로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미국은 죽은 군인의 유해라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이는데 우리는 살아있는 국군 포로 문제도 외면하는 것은 아닌가.

    북한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따른 포로 교환으로 포로 문제는 종결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군 포로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하지만 휴전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포로 송환을 통해 인도받은 국군 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6·25전쟁 당시 국군 포로 및 실종자 수가 8만2000여 명으로 집계된 것을 보면 적어도 5만명 이상의 국군 포로가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국군 포로들은 삼엄한 통제하에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고 전후(戰後) 복구 등에 동원됐다. 북한 사회에 배치된 이후에도 탄광, 임산 부문 등 중노동 분야에서 노예같이 일하면서 차별을 받았다.

    지난 1994년 조창호 중위가 탈북에 성공한 이후 81명이 이산가족 교류 주선단체 등의 도움으로 고국으로 귀환했다. 북한에 생존한 국군 포로는 2009년 당시 560여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남북이산가족협의회의 한 회원은 중국으로 건너와 조카를 만난 국군 포로를 만난 적이 있다. 이분에게 한국의 발전상과 함께 귀국 시 예우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는 처자식이 살고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남한 고향에 가봐도 부모 형제는 다 돌아가시고 없으니 자식들이 있는 북한에 살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지었다. 지난해에는 6·25전쟁 때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사망한 국군 포로 김모씨의 유골이 국내에 들어왔다.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어달라"는 김씨의 유언에 따라 그의 외손녀가 유골을 들고 입국했다.

    이제라도 국군 포로 송환을 위한 특단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들의 가족도 같이 데려와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판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독일어로 '자유를 사다'라는 뜻으로, 통일 전 서독이 동독에 있는 정치인들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현금과 물자를 제공했던 전략이다. 서독은 1963~1989년까지 34억6400만마르크 상당의 현금과 물자를 동독에 제공하고 정치범 3만3000명을 석방시켰다.

    북한에 현금 등을 제공하면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는 최근 인도적 지원일 경우 제재 면제를 허용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한국판 '프라이카우프' 정책은 국군 포로 및 유해 송환을 통해 국군 포로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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