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은 나쁜 '내쉬균형'…자신의 이익에 치중, 모두에게 불리한 결과
양국 무역전쟁 피해 가시화...신뢰 회복⋅WTO 역할 확대가 종전의 조건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에 대한 보복조치로 고율관세를 추가 부과할 미국산 600억달러 수입제품 리스트를 공표한지 하루가 지난 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이기고 있다. 중국이 처음으로 미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증시는 4개월간 27% 떨어졌지만 미국 증시는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과 “미국 철강공장 근로자들이 다시 일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관세가 중국 경제에 해를 끼치자 중국 정부가 광고에 홍보에 돈을 들여 미국의 관세에 반대하라고 미국의 정치인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래리 커들러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중국의 600억달러 보복관세 조치가 발표된 직후인 3일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나는 오늘 일본 주식시장이 중국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강조했다. 2일 상하이와 선전 증시를 합친 중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2일 종가 기준으로 6조900억 달러로 집계돼 일본 도쿄 증시의 6조1600억 달러를 밑돌아 2014년 11월 이후 4년여만에 세계 2위 자리를 뺏겼다.
중국 관변 성향의 SNS 뉴스계정 뉴탄친(牛彈琴)은 6일 “올들어 장중 최고치인 1월 26일의 3587(상하이종합지수)로 계산해도 3일까지 23.6% 하락한 것”이라며 “27%의 수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트럼프는 수학을 어디서 배웠냐”고 비꼬았지만 미국이 25% 추가관세를 부과할 50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 명단을 공개한 4월 3일 이후 최근 4개월간 미중 증시의 동조화가 깨지고 격차가 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위안화 급락세도 중국 경제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커들러 위원장은 "중국은 현재 곤란한 처지에 있다. 그들의 경제는 좋지 않고(lousy), 투자자들은 떠나고 있으며, 중국의 통화가치는 떨어지고 있다"면서 "중국 통화가치 하락의 일부는 중국을 떠나는 자본 때문으로 자본이 중국을 떠나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환율 안정책인 선물환 증거금(거래액의 20%) 제도를 다시 도입하겠다고 지난 3일 저녁 긴급 발표한 것도 위안화 환율 불안정성이 심각함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인민은행은 2015년 8월 11일 위안화 절하 조치 이후 위안화 급락발 금융시장 혼란이 확산되자 선물환 증거금 제도를 도입했다가 지난해 환율 안정으로 폐지했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 경제에만 해를 끼치는 건 아니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이 경영진과 노조 관계자를 백악관으로 불러 ‘미국 제조업의 모델’이라고 찬사를 보냈던 할리데이비슨이 해외에 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지난 6월 발표한 것은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에 미친 역풍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미국 최대 모바일 칩 업체 퀄컴이 신성장 동력을 얻기 위해 440억달러를 들여 추진한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인수가 중국 당국의 불허로 무산되고, 미국 최대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중국에서 불법 복제 혐의로 현지법원으로부터 일부 제품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미국의 피해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 농무부가 지난 달 24일 중국의 보복관세로 피해 입은 농민들을 위한 120억달러 지원계획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피해가 크다는 방증이다.
모두에게 불리한 무역전쟁을 두고 경제학자들은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비유한다. 독일 퀼른대학의 악셀 오켄펠스(Axel Ockenfels)교수, 영국 바스대학의 리차드 페어차일드(Richard Fairchild)교수, 뤄위쩌(羅雨澤)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중심 해외경제연구부연구실 주임 등이 대표적이다.
♢무역전쟁이라는 나쁜 ‘내쉬균형’
중국은 당국의 성명과 관영 매체를 통해 미국이 2000억달러 중국산 수입제품에 고율관세 부과를 추진하는 것을 “이성을 잃는 행위”로 비난하고 이에 대응해 600억달러 미국산 제품에 고율관세로 맞보복하는 것을 “이성적인 자제”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협력적인 선택이 양자에 최선의 결과를 주지만 현실은 자기 이익 중심적인 ‘이성적인 선택’으로 무역전쟁이라는 ‘나쁜 균형’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문제는 “비(非)이성적인 게 아니고 내가 강하게 밀어부치면 상대가 물러설 것이라는 판단 착오 탓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대치가 생긴다”(블룸버그통신)는 데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건 상대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호 신뢰, 그리고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시스템이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모두 무역전쟁에 대해 경제를 넘어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지며 접근하고 있다. 6일로 공식 개시 한달이 된 미중 무역전쟁의 해법이 더욱 꼬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오켄펠스 교수는 최근 독일 경제 주간지 비르츠샤프트보케에 “게임이론으로 얘기하면 양자간 무역전쟁은 안정적인 균형”이라며 “협력과 자유무역은 매우 강력한 균형을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기 이익에만 치중해서 생기는 ‘내쉬 균형’으로의 유혹이 강력하다는 것이다. ‘내쉬 균형’은 영화 ‘뷰티불 마인드’의 실제 주인공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수학자 존 내쉬의 이름을 따 지은 말로 양자에게 불리한 치명적인 균형에 비유된다.
미국과 중국 모두 고관세로 대표되는 ‘강경책’과 타협이라는 유화책의 선택 사이에 놓여있는데 지금과 같은 관세 맞보복의 무역전쟁 처럼 양자에게 모두 불리한 균형으로 쏠리는 힘이 양자에게 모두 유리한 타협의 선택을 끌어내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독일의 산업 경제학자 칼 모라스(Karl Morasch)도 게임이론이 미국과 중국사이에 상호 보복관세가 부과되는 현상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뤄위쩌 주임도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중 무역전쟁이 양측 모두에 손해를 끼치는 죄수의 딜레마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현 상황을 지속할 경우 무역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균형은 안정돼 있다’는 특성이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치적인 리스크를 컴퓨터모델로 측정하는 제오퀀트의 마크 로젠버그(Mark Rosenberg) 최고경영자(CEO)는 “미중간 무역분쟁이 대략 2주간 고조됐다가 2주간 상대적으로 진정되는 주기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다”며 “양측이 모두 상대에 대한 동등한 레버리지를 갖고 있어 누구도 먼저 물러설 인센티브가 없어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역전쟁 피해 가시화
한달 전인 지난 달 6일 미국의 340억달러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와 중국의 즉각적인 맞보복이 시작된 이후 중국 경기를 반영한 7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미중 무역전쟁이 중국경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31일 내놓은 제조업 PMI가 24개월 연속 50%이상(확장국면)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이를 구성하는 신규 수출 주문지수는 49.8%로 전년 동기보다 1.1%포인트 하락했고, 수입지수는 49.6%로 23개월만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밀렸다.
이날 함께 발표된 비제조업(서비스업) PMI와 종합 PMI 도 전달보다 각각 1%포인트, 0.8%포인트 하락한 54%와 53.6%를 기록해 3대 PMI가 모두 전달 대비 하락했다. 특히 중견기업의 7월 제조업 PMI는 49.9%로 전달과 같아 두달 연속 50%를 밑돌았다. 소기업의 경우 49.3%로 전달보다 0.5%포인트 하락했다.
차이신(財新)이 1일 발표한 7일 제조업 PMI도 50.8%로 전달보다 0.2%포인트 떨어져 8개월래 최저수준으로 밀렸다. 신수출 주문지수는 4개월 연속 50% 이하(위축국면)로 25개월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3일 나온 차이신 서비스 PMI도 52.8%로 전달 대비 1.1%포인트 떨어져 4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8일 발표되는 7월 중국 수출입통계와 9일 나오는 7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미중 무역전쟁 충격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 중국은 2위 통신장비업체인 ZTE가 미국 당국의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령으로 도산 위기까지 몰렸다가 제재 해제로 기사회생하면서 미중간 실력차에 대한 자성론이 제기됐다. “중국의 종합국력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슈퍼차이나론’을 설파해온 중국의 관변 경제학자 후안강(胡鞍鋼) 칭화대 국정연구원장이 칭화대 동문들로부터 공개 해임 압박을 받은 것도 자성론의 연장선에 있다.
중국 인터넷에는 무역전쟁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중국 당국의 주장에 “일본의 중국 침략도 책임은 일본에 있었다”며 “중요한 건 책임보다는 실력이다”고 강조하는 류의 글이 돈다. “중국은 미국이 (고율관세를 부과해) 안 사줘도 힘들고, (반도체를) 안 팔아도 힘들다”며 중국의 현실을 풍자한 글도 눈에 띈다.
미국 역시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와 CPI가 각각 9, 10일 발표되면서 무역전쟁의 부메랑이 또 다시 부각될 전망이다. 중국의 2분기 성장률은 6.7%로 전분기보다 0.1% 포인트 둔화됐다. 미국은 이보다 낮은 4.1%를 기록했지만 잠재성장률의 2배수준으로 강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쁜 균형 깰 수 있을까
오켄펠스 교수는 “문화와 법적인 제도가 없다면 딜레마에 처한 죄수처럼 혼자 가려는 유혹이 매우 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상대가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로 격리된 조건에 있는 죄수의 딜레마와 달리 미중간엔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신뢰 쌓기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상호 관세부과를 유예하기로 한 결정을 미국이 무산시키면서 양측의 상호신뢰는 크게 떨어진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 트위터에 “중국이 우리에게 대화를 해오고 있다”고 말했지만, 중국 당국의 입장은 “미국 측은 신의를 지키지 않고, 이랬다저랬다하면서 협상의 문을 닫아버렸다” “상호 존중과 평등의 원칙에 바탕을 둔 협상만이 무역 갈등해소 방법이다” 등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 중국 부총리가 미중 무역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물밑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실패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4일 보도한 것도 무역전쟁이라는 균형을 깨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3의 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가 상호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로버트 스타이거(Robert Staiger) 미국 다트머스 대학 교수는 “무역협정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한 방식”이라고 강조한다. WTO 역할 확대가 종전의 여건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은 WTO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양자 협상을 선호한다는 데 있다. 중국도 WTO 개혁에는 동의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원한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 경제 제재에 올인해 온 트럼프 대통령과 1인 권력체제를 공고히 해온 시 주석으론 유화책을 취할 경우 치러야할 정치적인 비용까지 감안해야한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경제부문 헤드를 지낸 게빈 데이비스 풀크럼자산관리 회장은 “중국의 지도자들은 경제적인 비용 뿐 아니라 정치적인 잇점까지 감안하는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은 4일 개막한 중국 전·현직 최고 수뇌부의 연례 비밀회의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특히 베이다이허 개막을 알리는 신호로 여겨져온 베이다이허 전문가 좌담회 주관자가 당초 예상된 왕후닝(王滬寧) 정치국 상무위원이 아니고 천시(陳希) 중앙조직부장으로 드러나면서 왕의 신변 이상설까지 도는 등 미중 무역전쟁의 정치리스크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중국의 굴기(崛起)를 부각시켜 미국의 견제를 촉발했다는 이유로 선전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왕이 속죄양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건 왕이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시진핑(習近平) 3명의 총서기를 보좌한 인물이라는 무게감을 감안할 때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시 주석으로선 미중 무역전쟁 뿐 아니라 부채 감축(디레버리징)정책으로 투자와 소비 증가세가 동반 둔화되고 있는데다 ‘가짜 백신’ 사태까지 터져 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늘어나는 상황을 타개할 묘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