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징신과 이탈리아 명품 신발, 똑 닮았네

입력 2018.08.06 10:00

국립민속박물관, 수제화 장인 특별전
징신부터 허영호 등산화까지, 국내 수제화 역사 한눈에

구두 제작을 시연하는 수제화 장인들./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낡은 고무신과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가죽신이 나란히 놓였다. 두 신발은 바닥에 작은 돌기가 촘촘히 박힌 형태가 똑 닮았다. 조선 시대의 제화 장인과 현대 이탈리아의 장인은 어떻게 비슷한 신발을 만들게 된 걸까?

국립민속박물관이 수제화 장인들을 조명하는 전시 ‘세대를 넘어–수제화 장인’ 특별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2014년 송림수제화를 조사하고 작성한 '을지로 수표교에서 4대 80년-송림수제화의 장인들' 보고서를 바탕으로, 신발의 역사를 조명했다. 구두를 신은 고종황제의 사진부터 산악인 허영호의 등산화까지 유물과 기록, 사진 등 약 224점을 선보인다.

◇ 구한말 들어온 서양 구두, 가격은 쌀 한 가마 값

전시는 '구두 갖바치' '백 년의 가게' '천 번의 손길'로 구성됐다. 갖바치란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던 사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조선 시대 후기에 제작된 징신이 보인다. 기름에 절인 생가죽으로 만든 징신은 바닥에 동그란 쇠붙이가 박혀 있어 진흙이 달 붙지 않고 방수도 됐다. 삼국시대부터 신어온 신으로, 유혜(油鞋)라고도 불린다.

조선 시대 '징신’과 2018년 토즈가 만든 ‘고미노’ 신발, 밑창의 원형 돌기가 똑 닮아있다./김은영 기자
징신 바로 옆엔 현대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놓여있다. 이탈리아 구두 제조업체 토즈가 만든 ‘고미노’ 신발이다. 고무신인 징신과 달리 모카신(인디언이 신던 뒤축 없는 가죽 구두) 형태지만, 놀랍게도 밑창이 닮아있다. 우리의 신발에서 영감을 얻은 것 아닐까 의혹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신발은 델라 발레 토즈 회장이 1970년대 뉴욕의 한 백화점에서 발견한 포르투갈 신발을 재해석해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인은 징신을 본 적이 있을까? 시공을 초월한 제화 장인의 기술력이 놀랍기만 하다.

이어 서양식 정장에 구두를 신은 고종 황제의 사진이 보인다. 국내에 서양 구두가 도입된 것은 1880년 개화파와 외교관들이 구두를 신으면서다. 국내 최초의 구두 가게는 1898년 설립된 이규익 양화점이다. 당시 구두는 양화(洋靴)라 불렸다. 구두 한 켤레 값은 쌀 한 가마 값이었다. 군 서기 봉급이 12원일 때, 수제화 일등 직공은 48원을 받았을 정도로 제화공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서양식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고종황제의 모습./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구두는 점차 대중화됐다. 1954년 금강, 1961년에는 에스콰이어 제화 등 기성화 업체가 생겼다. 구두 제작 기술도 발전해 1967년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한국의 제화 장인이 처음 금메달을 수상했다.

수제화는 인류의 도전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산악인 허영호가 1995년 북극해를 횡단할 때 신었던 특수 제작 등산화와 2014년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신었던 등산화 등도 확인할 수 있다.

◇ 83년 된 구둣가게 이야기 통해 장인정신 조명

최근 몇 년 사이 제화 시장이 위축되면서 수제화 장인의 위상도 하락했다. 설상가상 첨단과학의 발달로 3D프린터와 풋 스캐너(foot scanner)가 목형(木型) 구두골(발 모양을 본뜬 틀)을 빠르게 대체해 갈 태세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손맛’을 대신하긴 어려운 노릇, 여전히 수제화를 찾는 이들이 있다. 4대째, 80년 넘게 수제화를 짓고 있는 송림수제화가 이를 증명한다. 이곳에서 신발을 맞추기 위해선 최소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

전시장 전경./국립민속박물관 제공
하도겸 학예연구사는 “장인들의 천국이라는 일본에서도 대를 이어 신발을 만드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송림수제화의 창업주 이귀석 씨부터 4대 임승용(26) 씨까지, 수제화 장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장인정신을 조명했다”라고 말했다.

전시장엔 제화 장인의 작업 공방을 재현한 공간도 있다. 가죽을 재단하고, 갑피(바닥 창을 뺀 가죽 부분을 만드는 공정)를 만들고, 이를 밑창에 붙이고 완성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주말에는 수제화 장인이 나와 직접 신발 제작을 시연한다. 이번 전시는 10월 1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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