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가발 만들어 팔던 나라가 原電 수출하는 기적… 이제 스스로 허물어"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8.08.06 03:13

    '北경수로'와 'UAE 원전'의 주역, 변준연씨

    "세계에서 원전 수출국은 우리를 포함해 미국·프랑스·일본·중국·러시아 등 6개국뿐이다. 이런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최첨단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우리가 스스로 원자력을 포기하고 시장을 떠나려고 한다. 어떤 나라들은 수십년간 노력하고, 하고 싶어도 기술이 안 돼 여기에 끼지 못하는데…, 정말 납득이 안 되는 일이다."

    변준연(62)씨는 한전(韓電)에서 36년간 재직하면서 북한 경수로 건설 사업을 총괄했고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원전수출본부장과 해외사업부사장 등의 이력처럼 그는 세계시장을 직접 뛰었던 사람이다. 지난 4월 한전 사장 최종 후보에 올라갔지만 탈락했다.

    변준연씨는“대북 경수로 사업의 노하우가 UAE 원전 수출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변준연씨는“대북 경수로 사업의 노하우가 UAE 원전 수출에 결정적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그를 만난 것은 '한전이 22조원 규모의 영국 원전(原電) 수출에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는 발표가 있은 뒤였다.

    "원전 수출은 국가 대항전이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 같은 탈원전 분위기에서 산자부나 한전의 어느 누가 한번 해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겠나."

    ―작년만 해도 영국 원전 수출이 기정사실처럼 보도됐는데,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됐나?

    "이번에는 우리가 22조원의 투자를 해서 원전을 건설한 뒤 직접 운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다. 투자를 받으려면 언제까지 원금을 상환하고 언제부터 수익이 난다는 구체적 이행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보증도 해줘야 한다. 이런 금융 조달 계획을 내놓지 않고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도 보이지 않은 채 지체시키다보니 우선협상자의 지위를 잃게 된 것 같다."

    ―재원 조달 계획에서 발생된 문제라는 것인가?

    "당사자들은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금융계약을 하려고 한다. 과거에 불발된 터키 원전도 이런 방식이었다. 당시 전력 1kw당 단가를 얼마에 책정하느냐를 놓고 협상할 때 1센트 차이가 전체로는 8조원 차이가 났다. 대규모 투자를 하려면 이처럼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계산해야 한다. 심지어 발전소 건설 공사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 있고, 당초 계획과는 달리 발전소 효율이 낮고 예상된 전기 출력이 실제 안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숱한 리스크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것이 투자자 입장에서 쉽지 않다."

    ―당초 이런 조건을 모르고 한전이 협상에 뛰어든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전이 협상 주체는 맞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원전을 수출하려면 건설사, 설계회사, 기자재 제작 회사, 운송회사, 보험회사 등이 힘을 합쳐야 한다. 막대한 외부 재정 지원도 받아야 한다. 지금은 탈원전 분위기로 이를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없고 꼭 하겠다는 적극성도 모자랐다고 본다. 비록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는 잃었지만 협상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영국 가디언지(紙)는 "한국 정부의 교체와 한전의 새 사장 임명으로 불확실성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산자부에서는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상실은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다고 반박했는데.

    "이번 계약 당사자는 영국이 아니다. 영국 원전 사업의 수주권을 딴 일본 도시바와 협상하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이 직접 이유는 아닐 것이다. 대규모 재원 조달과 투자금 회수, 전반적인 수익 조건 등에서 서로 계산이 안 맞아 그랬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은 '탈원전'으로 전문 인력과 부품업체 등 원전 인프라가 허물어질 판인데, 영국 정부로서는 자기 땅에 '한국형 원전'이 30~60년 운영되는 동안 안전 관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우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이 한전 출신이라 이해관계 때문에 탈원전 정책을 비판한다고 보지 않겠나?

    "원자력을 단순히 발전소 하나 안 짓는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원전 건설은 엔진인 원자로(原子爐)만이 아니라 최고 수준의 기술과 내진 설계가 뒷받침된 펌프, 케이블, 밸브, 배관, 첨단 전자제품 등 수백만 개의 기기와 부품이 모여 이뤄진다. 또 운영과 유지 보수도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과 수많은 전문 인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제품이 지속적으로 생산돼야 한다. 급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수요가 끊기면 이런 산업계 인프라가 무너진다. 한번 무너지면 회복이 어렵다. 산업계 기술력의 후퇴는 국가 차원의 재앙이 된다."

    ―폭염에 전력난을 겪으면서 일반 대중도 탈원전의 비현실성을 알게 됐다. 하지만 현정권은 특정 이념에 사로잡혀 자신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도 물러설 것 같지 않다. 갑갑한 얘기는 그만하고, 당신은 과거 대북 경수로 건설에 사업총괄역을 맡았다고 들었다. 1995년 북한의 핵(核) 동결 조건으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인 한국·미국·일본·EU 등이 100만kW급 경수로 두 기를 지어주기로 한 것인데?

    "정치적으로 시작됐으나 한전 입장에서는 비즈니스였다. 처음에 총사업비로 75억달러를 제시하자, KEDO 이사국들은 자신의 분담금을 적게 하려고 총사업비를 깎을 것을 요구했다. 2년간 협상을 벌여 최종 46억달러로 확정했다."

    ―나라별로 어떻게 사업비를 분담했나?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사업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분담금의 70%를 내기로 했다. 일본은 10억달러를 엔화로 내겠다고 했다. 전체 분담금의 22%에 해당되는 돈이다. 미국은 발전소 준공 때까지 매년 50만t의 중유 비용을 부담키로 했다. EU는 미국 뉴욕에 있는 KEDO 사무국의 운영비 일부를 댔다. 당시 북한에 경수로를 공짜로 준 게 아니었다. 북한은 준공 후 3년 거치 17년 분할 상환하기로 되어 있었다."

    ―경수로 건설 현장은 함흥에서 약간 떨어진 신포였는데.

    "첫 3년 동안 작업 기반 인프라를 만들었다. 도로와 방파제를 건설하고 노무자들이 이용할 숙소·식당·체육시설·병원·종교시설 등을 지었다. 북한과는 상호 합의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 북한 출입은 여권과 비자, 비표 어느 것으로 하느냐, 건설 현장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조사하느냐, 북한 내 비행기나 자동차를 이용할 때 운임은 얼마나 할 것인가 등 모두 협상해야 했다. 공휴일, 식사 제공, 출근 시간, 작업지시 방법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협상해야 했다. 이때 작성된 협정서가 뒷날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에서 많은 참조가 됐다."

    1997년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
    1997년 경수로 공사 현장에서.
    ―경수로 사업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실험을 몰래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2005년 말 중단됐는데.

    "그때 우리의 원전 기술과 부품이 들어간 경수로가 완성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북한이 경수로를 운영하려면 우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남북관계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전체 공정의 34%에서 중단됐고, 그때까지 1조5000억원이 투입됐다. 마지막 날 공사 현장에서 북측은 어떻게 행동했나?

    "북측 관계자가 우리를 불러놓고 평양 수뇌부의 지시 사항을 낭독했다. '모든 합의 사항 무효, 한 달 만에 모든 인력은 현장 철수, 현장 기자재는 그대로 둘 것, 모두 서류 및 시설은 현 상태로 둘 것, 이를 어길 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사 현장은 콘크리트 흉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수로 사업의 경험은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데 절대적 도움이 됐다."

    ―북한 경수로와 UAE 원전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나?

    "원전 수출에는 발주국의 까다로운 요구 사항에 부합하는 명품 제안서를 영문으로 내는 게 중요했다. 10여 년간 경수로 사업을 하면서 KEDO 이사국의 요구에 따라 수만 장의 영문 서류를 작성한 노하우가 UAE 원전 수주에 결정적으로 통했다."

    ―UAE에 원전 수출은 누가 해보자고 했나?

    "2009년 초 원전 사업 입찰 설명회에 참석해 달라는 UAE의 공식 초청장을 받았다. 이런 입찰 초청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20조원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해외 프로젝트였다."

    ―사전에 통보나 만남 없이 초청된 것인가?

    "2008년 말 양복 차림을 한 UAE 정부 측 암행탐색반이 주요 원전 국가들을 순방했다. 이들은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무시당했고, 일본에서는 의례적인 미팅을 했다. 한전을 찾아왔을 때 내가 이들을 접대했다.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그 뒤 다시 한번 찾아왔다. 이들이 '내년에 원전 도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이집트·터키·필리핀 등은 수십년간 그런 계획을 세웠지만 여전히 원전을 한 기도 갖지 못했으니까."

    이들이 UAE 원자력전담대사, 원자력사장 및 정부의 원전 최고 정책 책임자라는 건 뒷날 입찰 설명회에서 알았다고 한다. 설명회는 사흘간 진행됐다. 입찰 요구 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를 경쟁자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경수로 사업의 자료가 잘 준비돼 있었다. 경수로팀을 주축으로 한 100여 명이 한전 지하 벙커에 '워룸(war room)'을 두고 열 달 동안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작년에 완공된 신고리 3호기가 UAE에 수출한 원전과 같은 모델인데.

    "UAE 수출 당시 설계 도면만 있었지 차세대 한국형 원전의 실체가 없었다. 과거에 정주영 현대회장이 거북선 도안이 있는 500원 동전을 보여주고 영국에서 선박을 수주한 상황과 비슷했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먼저 4개를 짓고 있으니 당신 나라에 건설할 원전은 다섯 번째가 된다. 당신 것은 더 완벽하게 지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는 원전 수주를 위해 두바이만 70차례를 오갔고, 그해 말 한국으로 결정됐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나라가 월드컵 우승국이 된 것과 같은 쾌거였다. 가장 값싼 노동집약형 산업인 가발을 만들어 팔던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최강국들을 제치고 첨단 원전 기술을 수출하는 기적의 나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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