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진체, 남도에서 꽃피워"

입력 2018.08.01 14:54 | 수정 2018.08.01 15:01

학정 이돈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이다. 그는 동국진체의 맥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신동국진체의 대가라 평가받고 있다.
③동국진체 전통, 남도서 계승
윤순·이광사·이삼만·송운회·손재형·안규동·이돈흥
근대 이후 서예(동국진체)가 남도 예술전통으로
광주광역시=권경안 기자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오병희씨는 “남도는 서예의 본고장”이라며 “남도는 민족적 자각인 동국진체라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서체를 계승, 전개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예술가열전-남도미술사’에서 “서예는 남도의 예술전통”이라는 관점에서 그 연원과 전개를 추적하였다. 이 글은 그의 저작중 서예분야를 요약한 것이다.

18세기는 민족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한 한국적 서풍인 동국진체(東國眞體)가 출현한 한국서예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시기이다. 이에 앞선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에는 부드럽고 유연한 조맹부의 송설체가 유행하였다. 그에 앞선 통일신라때는 구양순의 해서체가 유행하였다.

옥동 이서와 공재 윤두서로 시작한 동국진체는 자유분방한 필치에 해학과 여유를 내재시키는 형상성을 추구하였다. 동국진체는 작가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학문을 연구한 양명학자 원교 이광사에 이르러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동국진체는 조선후기 일기 시작한 조선적 서법을 말한다. 중국 법첩의 범주를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적 자각 예술운동이다. 남도는 민족적 자각인 동국진체라는 민족의 독특한 서체를 계승, 전개하였다. 남도에선 많은 서예가들이 서체를 독창적으로 개발, 전개하였다.

백하 윤순(1680~1741)은 온아하고 단정한 글씨를 썼다. 윤순은 조선시대 양명학의 태두 정제두의 문인이다. 우리나라 역대서법과 중국서법을 아울러 익혀 한국적 서풍을 일으켰다.

윤순에게 사사받은 원교 이광사(1705~1777)는 1762년부터 신지도에서 23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동국진체를 완성하였다. 대표작은 해남 대흥사 편액 ‘大雄寶殿(대웅보전)’이다. 성정과 기질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개성을 지녔다. 그의 서체는 남도의 선승에게 이어졌다. 전남 영암 출신 즉원(1738~1794), 해남 출신 혜장(1772~1811), 두륜산에서 수계한 혜집(1791~1858) 등이 필명이 높았다.

그러나, 조선말기 추사 김정희는 자유로운 동국진체에 비판적이었다. 주자학적인 반듯함과 격조를 중시한 추사체가 유행함에 따라, 동국진체의 세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자각적 예술운동으로 남도를 중심으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동국진체는 호남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근대 이후에는 광주를 뿌리를 내리는 남도의 전통예술이 되었다.

남도 동국진체의 전통은 창암 이삼만(1770~1847), 노사 기정진(1798~1879), 기초 모수명(?~?), 설주 송운회(1874~1965)로 맥이 이어졌다. 이삼만은 어린시절 이광사에게 서예를 배웠다. 이삼만의 서체인 창암체는 붓이 곧 자연이란 생각으로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쓴 독창적인 서체이다. 이삼만의 문하에서 호산 서홍순(1798~1876), 기초 모수명, 해사 김정근, 노사 기정진으로 이어졌다. 다시 이들에 의해 설주 송운회, 의재 허백련, 근원 구철우(1904~1989)으로 맥이 계승되었다. 송운회는 송곡 안규동을 가르쳤다. 노사 기정진에 이어진 서맥은 의재 허백련, 기우만, 노백헌, 정재규 등을 통해 계승되었다.

근원 구철우(1904~1989)는 전북 강암 송성룡, 제주 소암 현중화와 함께 남도삼절로 불리며 지조높은 선비의 삶을 살았다. 허백련 문하에서 그림과 글씨를 배웠다. 그의 서맥은 지헌 오명렬, 우현 장은정, 현계 김정희, 무전 곽영주, 담헌 전명옥, 공전 손호근 등으로 이들이 주축이 된 근묵회를 통해 이어지고 있따.

진도출신 손재형(1902~1981)은 서예를 예술로 자리매김하였다. 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에 뿌리를 두었다. 중국에서 서법, 일본에서 서도라 했는데, 우리는 일제강점기 서도로 따라 불렀다. 그는 서도를 서예라 주창하였다. 소전체라는 독특한 설체를 확립한 한국현대서예의 거목이었다. 한글 예서체의 새로운 서체를 완성, 동국진체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였다. 1944년 일본에 건너가 동양철학자 후지스카 지카시를 석득, 김정희의 세한도(국보제180호)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보성출신 안규동(1907~1987)은 구철우 등과 함께 광주서예연구원을 개설, 수많은 제자들을 길렀다.

송곡 안규동은 동국진체의 조형구조와 원리를 터득하여 송곡체 또는 천마산인체라 불리는 독창적인 서체를 창안하였다. 1963년 광주서예연구원을 설립, 후진을 양성하였다. 제자들은 해서와 초서, 행서를 각 3년, 전서를 2년씩 배웠다. 배출한 제자로 백천당 고기임, 학정 이돈흥, 창석 김창동, 송파 이규형, 금초 정광주, 용곡 조기동, 운암 조용민, 녹양 박경래 등이 있다. 한자의 오체(전·예·해·행·초서)를 근본으로 개성과 독창성을 가미하여 질박하면서도 고아한 동국진체가 송곡체이다.

학정 이돈흥은 신동국진체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큰 서예가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며 붓을 던져버렸던 스승인 송곡 선생이 혹독하게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곧은 성격으로 불의와 절대 타협하지 않은 스승을 최고로 존경하며 그런 스승이 늘 보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사서삼경을 독파하여 고전을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서예의 세계를 개척했다. 학정은 1975년 학정서예연구원을 설립, 제자들을 양성해오고 있다. 그의 문하생들의 모임 연우회는 한국 서단을 대표하는 서예단체이다. 사람들은 그의 서체를 학정체라 부른다. 그는 수양을 강조하며, 자신만의 성정을 담아낸 글씨를 써야한다고 말한다.

손재형의 계보는 경암 김상필, 평보 서희환, 장전 하남호, 금봉 박행보, 원당 김제운으로 이어졌다. 서희환은 한문 예서체와 한글 고체를 조화 발전시켜 평보체를 창안하였다. 장전 하남호는 스승의 전예를 탐닉해 경지를 일궜다. 금봉 박행보는 허백련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손재형으로부터 서예와 문인화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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