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해버린 작품들… 컬렉터 이름 건 두 전시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8.07.31 03:00

    17년간 民畵 수집 해온 김세종, 니키 드 생팔에 빠진 요코 마즈다
    예술의전당서 컬렉션 선보여 "고통스럽지만 최고의 행복이죠"

    김세종(왼쪽), 요코 마즈다
    김세종(왼쪽), 요코 마즈다
    식당 경영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던 요코 마즈다 시즈에(1931~2009)는 49세 때 도쿄의 갤러리에 들어갔다가 한 장의 판화를 보고 얼어붙었다. "주위의 소리가 사라지고 머리 위에 UFO 광선이 내려와 사로잡혔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흘 밤낮 동안 꿈에 그 판화가 나오자 갤러리에 가서 작품을 몽땅 샀다. 작가는 프랑스의 니키 드 생팔(1930~2002). 퐁피두 센터 앞 스트라빈스키 광장의 조각 분수를 만든 작가로 여성 해방을 담은 조각 '나나'로 유명하다. 마즈다의 생팔 컬렉션은 이렇게 시작됐다.

    컬렉터의 이름을 내건 전시 두 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니키 드 생팔 마즈다 컬렉션'이 9월 25일까지, 서예박물관에선 '판타지아 조선: 김세종 민화컬렉션'이 8월 26일까지 열린다. 컬렉터를 전면에 등장시킨 전시가 흔치 않을뿐더러, 전시 규모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것처럼

    컬렉터라고 하면 돈이 많거나 미술품으로 투자를 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마즈다나 김세종(62)은 재력가가 아니다. 이들은 열성 애호가이자, 수집가이며, 한 작가 혹은 한 분야에 '학위 없는 전문가' 반열에 오를 정도로 해박했다.

    김세종이 소장한 민화 '구운몽도'(왼쪽)와 '책가도'.
    김세종이 소장한 민화 '구운몽도'(왼쪽)와 '책가도'. /서예박물관
    김세종이 민화를 처음 접한 순간은 마즈다와 마찬가지로 일견종정(一見鍾情·첫눈에 반하다)이라 할 만했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던 30대 초반, 퇴근길에 후암동에 있는 표구사에 들렀다가 제주 문자도 민화를 봤다. 그는 "그날 밤 그림이 눈에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김세종은 고려 불상 복장 유물과 고려 화엄경 두루마리 등 자신이 아끼던 유물 세 점을 가져가 민화와 바꿨다.

    작가를 위해 미술관을 짓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두 컬렉터는 열정에 불타오르는 사랑을 시작했다. 김세종은 본격적으로 민화 수집을 한 지 17년이다. 기하학적 문양으로 가득 찬 명품 '책거리' 민화를 구입했을 땐 "설레고 두려워서 며칠 동안 펴볼 수도 없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문자도, 책거리, 삼국지, 구운몽, 까치호랑이, 무속화 등 김세종 소장품 중 70여 점을 엄선했다.

    니키 드 생팔의 '부처'(Buddha·1999)의 일부.
    니키 드 생팔의 '부처'(Buddha·1999)의 일부. 자신의 작품을 수집한 일본인 요코 마즈다 시즈에에게 영감을 받았다. /예술의전당
    마즈다는 생팔이 자신처럼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낸 데다가, 여성으로서 받은 억압과 고통도 공유한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빠져들었다.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표현한 생팔의 작품에서 마즈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생팔을 알기 전 한 번도 일본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던 마즈다는 생팔 미술관을 일본에 짓기 위해 파리로 건너간다. 그 뒤로 두 사람은 20년간 500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생팔의 작품 세계를 공유했다. 마즈다가 소장한 생팔의 회화와 조각, 편지 등 127점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컬렉터는 일종의 창작자"

    모든 사랑이 그러하듯, 두 사람의 수집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이들은 '부자 컬렉터'가 아니었다. 마즈다는 니키와 미술관 설계로 갈등을 빚는가 하면, 김세종은 민화가 주류 미술사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현실에 섭섭함을 느꼈다. 김세종은 저서 '컬렉션의 맛'에 "수집으로 인해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방황과 고통이 끊이지 않았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동시에 느꼈다"고 썼다.

    컬렉터를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모으는 사람이라고만 하기엔 부족하다. 생팔은 마즈다에게 영감을 받아 '부처'를 조각했고, 이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김세종은 컬렉터를 일종의 창작자라고 여긴다. "자신이 선택해 수집한 작품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였으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미 내 관점의 집합물이다. 각 수집품이 하나의 관점 속에 서로 충돌하며 다듬어져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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