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는 라일락향? 文學, 향기를 만나다

조선일보
  • 정상혁 기자
    입력 2018.07.30 03:00

    책의 주제에 맞는 향기 선정해 향수·방향제 등으로 만들어

    윤동주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향수.
    윤동주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향수. /글입다공방

    문학이 향수(香水)라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라벤더와 소나무, 사향이 섞인 시원한 박하향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은 여주인공 세실처럼 슬픔을 담담히 맞는 성숙하고 달콤한 바닐라향, 생텍쥐페리 '어린왕자'는 젊은 날의 추억을 꽃말로 지닌 라일락향….

    서울 영등포 독립서점 '프레센트14'에는 이 밖에도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나 알랭 드 보통 '키스 앤 텔' 같은 갖가지 소설을 주제로 한 문학의 향수가 진열돼 있다. 주인장 최승진(30)씨가 과거 향기 마케팅 회사 근무 경력을 살려 디퓨저로 제작한 것인데, 동명의 책과 제품을 세트로 묶어 판매하기도 한다. 최씨는 "책과 맥주를 결합한 '책맥'처럼 독립서점의 여러 실험이 나오던 중 책과 향기를 결합해봤다"면서 "20~30대 여성이 주 손님인데 향을 통한 문학 향유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학의 향수는 눈 대신 콧구멍으로 느끼는 것. '글입다공방'은 최근 백석·윤동주·정지용 등 한국 작가 9인의 대표작을 '북퍼퓸'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 4월 인터넷 예약 판매 당시 3일 만에 준비 수량 1500개가 전부 소진됐고, 지난달부터 오프라인으로 진출했다. 최근엔 성냥과 향초 세트를 내놓기도 했다. 아이디어를 기획한 안동혁(25)씨는 "향기로서 작품을 해석하고 공유하려는 시도"라며 "취향에 맞게 책이나 몸에 뿌려 독서의 순간을 더 즐겁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통해 가장 많은 근현대 작가를 접하는 고교생들의 발길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압도적인 판매 1위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향수. "워낙 유명하고 중성적인 느낌이라 남녀 불문 인기가 좋다"며 "바람 선선한 가을 밤 별을 바라보는 청년의 이미지를 조향(調香)했다"고 설명했다.

    대형 서점도 나섰다. 지난 5월 교보문고가 시중에 내놓은 이른바 '책향(冊香)'이다. 시트러스·피톤치드·허브·천연 소나무 오일을 섞은 이 책향은 울창한 나무숲을 연상케 하려고 2014년 개발해 서점에 뿌리고 있는 향인데, 고객 문의가 많아지자 아예 디퓨저·향초·종이 방향제 등으로 정식 출시했다. 교보문고 측은 "책향이 집 안에 스며들듯 독서가 생활 곳곳에 스며들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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