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mukbang’(먹방)은 고유명사..‘먹방 규제’ 놓고 시끌

입력 2018.07.29 20:00

정부, '폭식 조장' 먹방 규제 카드에 발칵
"비만과 무슨 상관" vs "지나치게 자극적"
식품업계 “먹방, ‘음식한류’ 만드는 新산업”

'먹방'이 갑자기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 26일 정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먹방'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게 불을 지폈다. 먹방이 폭식을 유발해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먹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인기 먹방 유튜버 밴쯔가 라면 먹방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로, 출연자가 직접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최근 ‘먹방’이 방송과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가이드라인 제정 추진 사실이 발표되자 역풍이 불었다.

대책을 발표한 보건복지부에 항의가 쏟아졌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28일 기준으로 '먹방과 폭식의 연관성이 없다', '이 정부는 왜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나' 등 먹방 규제를 반대하는 청원이 40여 건 올라왔다. 특히 먹방은 해외로 팔려나가는 '신(新)한류'로 자리 잡았는데, 정부가 수출길을 가로막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먹방 가이드라인은 '과도한 규제'일까, '적절한 대책'일까.

◇“먹는 것까지 간섭” vs “식욕 자극해 비만 불러”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비만대책 보도자료에는 ‘음주행태 개선을 위한 음주 가이드라인, 폭식 조장 미디어(TV, 인터넷방송 등)·광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라고 돼 있다. 이 대목이 여론을 자극했다. 정부는 예를 들어 오후 11시 이후 폭식을 유도하는 방송을 자제하게 하거나 고열량·저영양 식품의 광고 시간을 제한하고, 포털 사이트와 협의해 인터넷 콘텐츠를 규제하는 방안 등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먹방 문화의 실태를 파악하겠다는 것이지 규제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라는 여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복지부 해명대로 실제 규제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식생활까지 규제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불쾌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회사원 정모(38)씨는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서 국민의 즐거움까지 간섭하려고 하는 게 기분 나쁘다”면서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국민 건강이 그렇게 염려되면 흡연, 음주 장면부터 금지하라. 국가가 국민이 즐기는 문화를 짓밟아버리고 있다. 사람들을 웃게 하고 입맛 없는 사람 한 숟갈 뜰 수 있게 해주는 콘텐츠를 왜 규제하나"라는 항의 글도 올랐다.

28일 기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먹방 규제를 반대하는 청원이 40여 건 이상 올라왔다. /캡처
지난 27일 먹방 유튜버 중 국내 최초로 구독자 수 250만명을 돌파한 '밴쯔'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구독자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공개했다. “암 치료 등 다양한 이유로 위 기능을 상실해 오래 금식하는 환자들이 참 많은데, 이런 환자들이 침상에서 밴쯔님의 먹방을 보고 위로받는다”는 메시지에 대해 그는 “먹방의 좋은 예”라고 했다. 장덕현 문화평론가는 방송 인터뷰에서 “식욕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충만한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먹방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밴쯔의 경우 짜장면 10그릇을 13분 만에 해치우며 묘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1인 미디어의 경우 관심을 끌기 위해 갈수록 자극적이고 가학적으로 변해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런 비정상적인 콘텐츠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중3 자녀를 둔 이모(51)씨는 “아이들이 엄청난 양을 먹거나 지나치게 매운 음식을 먹는 먹방을 보고서 따라 하려고 할 때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번 규제 논의도 이런 시각에서 나온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먹방이 식욕과 관련이 있다는 실험 결과도 나왔다. 한 대학 연구팀이 40명에게는 10분짜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또 다른 40명에겐 같은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뒤 10분 동안 음식을 먹게 했다. 그 결과 음식 프로그램을 본 실험 참가자들이 50㎉를 더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신한류 콘텐츠 수출길 막힐까 우려”
한국의 ‘먹방’은 이미 유럽과 북미, 동남아 등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먹방’의 한국어 발음을 영어로 쓴 ‘mukbang’은 이미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각국의 음식 관련 방송 프로그램 자막에도 쓰이고, 유튜브에서는 먹방 콘텐츠의 제목이나 그래픽, 자막 등에 다양하게 붙는다. 밴쯔의 먹방 콘텐츠는 전체 조회 수가 5억 뷰에 달한다. 이 중 20%가 해외에서 본 것이다.

지난 4월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 공개된 '마라 불닭볶음면'이 나오는 동영상은 조회수가 60만 건이 넘었다. 삼양식품이 중국을 겨냥해 만든 ‘불닭볶음면’을 여성 진행자 2명이 나와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담았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전체 매출 4584억원의 45%가 해외에서 나왔다. 먹방 콘텐츠를 통해 한국의 먹거리로 팔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해외 유튜버 사이에서는 떡볶이와 라면, 김밥 등 한국의 음식을 소개하는 콘텐츠가 이미 단골 메뉴로 자리 잡았다. 해외에서는 환호하고 있는데, 정작 정부는 규제 대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해외 유튜버 베로니카 왕이 불닭볶음면 먹방을 진행하고 있다. 이 영상은 조회 수 49만 건을 기록했다. /유튜브 캡처
이에 대해 식품업계에서는 “한국의 음식, K-푸드는 이미 신(新)한류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고 있고, 이는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전파된다”고 말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세계인의 문화를 규제하려고 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면서 “먹방은 이미 한국 음식의 홍보와 수출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오히려 육성해야 할 신산업”이라고 말했다.

대만 유튜브 먹방 제작자인 아메이(A-May)는 지난 3월 국내에서 연 유튜브 주최 행사에서 "한국의 먹방을 통해 한국 음식문화가 대만에 소개되고 있다"며 "새로운 한류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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