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스코이號 인양" 가상화폐 투자자 모집
신일골드코인 판매센터 가보니 '공인중개사무소'
'9월 30일 기준 가상화폐 시세표'로 현혹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號)'를 인양하겠다는 신일그룹은 '보물선 발굴 보증금'을 충당한다며 가상화폐 투자자를 모집해왔다. 가상화폐의 이름은 '신일골드코인'이다.
지난 24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신일골드코인 우수판매센터' 지사 5곳을 찾아가 봤다. 한 지사장과의 대화는 이랬다.

"신일골드코인 다단계 사기라고 하던데요."
"곧 본사에서 CNN, BBC 기자들 모아놓고 반박 기자회견 할 겁니다. "
"보물선인지도 아직 모르는 거잖아요."
"코인 1개당 240원인데, 120원에 해드릴게요. 내일부터 얼마나 오를지 몰라요."

지난 14일 울릉도 앞바다에서 발견됐다는 돈스코이호 선체. 함명 ‘DONSKOII(돈스코이)’가 보인다. 아래 사진은 침몰 전 돈스코이호의 모습.

'유령 사무실' 차리고 가상화폐 투자 유도…홈페이지 폐쇄
이날 기자는 신일그룹 홈페이지에 적힌 서울 지역 신일골드코인 판매센터 5곳을 가봤다. '골드코인 판매센터' 5곳 주소를 찾아가 보니, 실제로는 은행·공인중개사무소· 생명공학연구소·오피스텔·원룸이 나왔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빌딩에 자리한 생명공학연구소 관계자는 "신일그룹이 뭐 하는 곳이냐"라고 도리어 기자에게 물었다. 허위로 주소를 적어놓은 것이다. 신일골드코인 측에 투자상담을 요청했더니 "사무실 찾아오기 복잡하잖아요. 잠실 OO카페에서 만납시다"했다.

신일골드코인 자문위원들도 가상화폐와는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자문위원들 면면을 보면 ‘수원 이씨 XX파 종친회 이사’ ‘대전 요식업 대의원’으로 나오는 식이었다. 신일골드코인 측은 주변인들로부터 1000만원 투자를 유치하면 센터장 같은 ‘감투’를 줬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센터장은 “회원 유치에 성공하면 코인으로 수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7월26일에 '9월30일' 기준 시세예측 그래프?
신일그룹은 상장만 하면 "가상화폐 가치가 100배가 될 것"이라고 광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격이 치솟는 그래프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래프는 오는 9월 30일을 기준으로 '실시간 거래량' '시세'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두 달 뒤 가상 화폐의 시장가치를 '예언'한 '가상 그래프'인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미래를 기준으로 시세표 만드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면서 "확인되지 않은 가치를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신일골드코인거래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세표. 올해 9월 30일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가짜’다.

전문가들은 신일골드코인이 가상화폐가 아니라고 본다. 가상화폐 업계관계자는 "가상화폐로 인정받으려면 대금 지급 등의 '스마트 계약'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신일골드코인은 현재까지 이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일골드코인을 구매하면 '코인(가상화폐)'이 아닌 '사이버머니'가 적립된다.
기자가 만난 지사장은 " 신일골드코인은 카이스트 박사가 만든 암호기술로 완벽히 만든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신일골드코인의 앱을 구동하면 신일골드코인 홈페이지만 나온다. 거래소가 없으니 보안시스템 자체도 뜨지 않는 것이다.

◇"꼬리 자르기 나선 것 아니냐"…드러나는 보물선 신기루
26일 오전 신일그룹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사장이 "CNN·BBC 기자들이 모인다"고 말했던 바로 그 기자회견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리에서 최용석 신일그룹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싱가포르 신일그룹은 상호만 같을 뿐 돈스코이호 탐사를 하는 신일그룹과 무관하다"며 "이제 신일그룹 명칭을 신일해양기술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신일골드코인 국내 상표 출원인 류모(48)씨는 신일그룹 최대주주다. 또 신일그룹은 자사 홈페이지에 ‘150조원 보물선 돈스코이호 인양, 신일골드코인, 신일국제거래소, 바이오 등을 통해 글로벌 중견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가상 화폐를 이달 23~24일까지 이틀 간 특별할인 하겠다며 “가까운 지사·센터에 문의하라”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그러나 24일 이후 신일그룹 홈페이지는 폐쇄된 상태다.

신일그룹은 자사 홈페이지에 ‘150조원 보물선 돈스코이호 인양, 신일골드코인, 신일국제거래소 등을 통해 글로벌 중견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4일 이후 이 홈페이지는 폐쇄된 상태다.

최 대표는 이에 대해 "돈스코이호 탐사 첫 시작은 전임 이사진이 시작한 것"이라면서 "사회적 관심에 부담을 느낀 신일그룹 전임 이사회가 물러나고 2기 이사회가 구성돼 유물적 가치 발굴이라는 목적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스코이호 안에 금화 또는 금괴가 있는지, 그 양은 현재 파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에 대해 가상화폐 개발자 한모(34)씨는 “가상화폐 다단계 사건으로 볼만한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니까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자신들은 가상화폐와 무관하다면서 꼬리 자르기 나선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26일 오전 신일그룹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상화폐 발행은 전임이사회가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일본군 공격을 받고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다. 앞서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는 울릉도 저동 해상 1.3㎞, 수심 434m 지점에서 함미에 'DONSKOII'라는 함명을 선명히 드러내며 발견됐다"고 밝혔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6일 신일그룹 경영진의 투자 사기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