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로 치닫고 있다. 6월 초 베이징 협상 결렬 이후 담판 일정을 잡기 위한 접촉까지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위안화 환율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화폐 전쟁으로 전선을 넓힐 태세이다. 중국도 보복 관세 등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통상 협상 참여 경험이 풍부한 양국 고위 당국자 출신 통상 전문가들로부터 무역 전쟁이 극단으로 가는 이유와 배경을 들었다.

[웬디 커틀러 前 USTR 부대표]

웬디 커틀러 전 미국무역대표부 부대표.

웬디 커틀러(65)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24일 미국 워싱턴DC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는 현명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했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다치고, 세계 경제 전체가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무역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지지 여론이 높은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과 불공평한 무역·투자 거래를 해왔다는 인식이 미국 내에 확산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뿐 아니라 의회, 기업, 노동자 등 많은 이해 당사자들이 이런 현실에 짜증을 느끼고, 이번에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불공평을 바로잡아야겠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고율 관세 부과라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불공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무역 전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어떤 결말로 매듭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때 미국 측 협상 대표였던 그는 USTR에서 28년간 일한 미국 내 최고의 무역 협상 전문가다. 그는 지금껏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조차도 고통을 감내하고 무역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을 밝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놀랐다고 했다.

미국은 무역 전쟁을 통해 중국 정부의 첨단기술 진흥 정책인 '중국제조 2025'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어느 나라든 산업진흥정책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중국제조 2025는 차별 없는 공정성, 투명성, 국가 간 조약 존중 같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면서 "수출 타깃과 시장 점유율 목표 등을 설정해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붓는 것은 무역 상대국에 불공평한 타격을 입히고 무역 왜곡을 가져온다"고 했다.

그는 또 "중국이 특정 산업에 다른 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쏟아부어 시장을 왜곡시키는 것도 문제"라며 "철강과 태양광 부문에서 이를 이미 목격했고, 반도체 부문에서도 이런 상황이 발생할지 주목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 등 상대국 회사들이 경쟁에 살아남지 못할 수 있다"고도 했다.

무역 전쟁의 향후 전망에 대해선 "고율 관세가 부과되기 시작한 초입에 서 있는 단계여서 아직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결국 협상을 하게 되겠지만 그 단계까지 모두 많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무역 전쟁에 승자는 없다"고 했다. '더 많은 물건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미국이 관세 보복 면에서 유리한 것 아닌가'라고 묻자 "어느 쪽이 상대를 제압할 힘을 가졌는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권위주의적 정권인 중국 정부는 국민을 움직일 수 있는 좀 더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있고 돈도 더 빨리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웨이젠궈 前 중국 상무부 부부장]

웨이젠궈 전 중국 상무부 부부장.

"무역 전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 최소 5년에서 7년까지 갈 수도 있다."

중국 상무부 웨이젠궈(魏建國) 전 부부장(차관)은 지난 16일 베이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년 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정권이 바뀌어도 무역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통상 문제를 관할했다. 지금은 중국국제교류중심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쩡페이옌 전 부총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 기구는 전직 경제 부처 부총리와 장·차관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경제 분야의 최고 싱크탱크로, 그의 발언은 사실상 중국 정부를 대변한다.

웨이 전 부부장은 무역 전쟁의 원인에 대해 "무역 역조 해소 자체가 아니라 향후 10~20년 동안 중국 발전을 억제하겠다는 뜻"이라며 "중국 첨단 기술의 발전과 중국 특색의 발전 방식 등을 겨냥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중국 공산당 주도의 경제 발전 방식을 큰 위협으로 보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추월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홀로 이번 무역 전쟁을 주도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중국 발전을 견제해야 한다고 보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 대표, 윌버 로스 상무장관,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4인방의 생각과 미국을 다시 강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결합해 무역 전쟁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공화당과 민주당의 엘리트들이 중국 견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어, 다음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연임에 실패해도 무역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웨이 전 부부장은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제조 2025' 프로젝트 중단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산업보조금은 중국보다 더 많고, 유럽·일본의 고속철도 정부 보조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며 "중국의 제조업 진흥 정책에 시비를 거는 것은 자기는 뛰면서 우리는 뛰지 말라는 격"이라고 했다.

그는 "무역 전쟁이 화폐 전쟁으로 가도 중국은 1980년대 일본처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미·일은 1985년 무역 역조 해소를 위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급속히 올리는 플라자합의를 결의했으며, 이 조치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는 "중국은 일본처럼 미국 말 잘 듣는 동맹국이 아니고, 일본에 비해 훨씬 큰 내수시장(5조6000만 달러·2017년 기준)도 갖고 있다"면서 "3조달러 이상의 외환도 보유하고 있어 일본처럼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무역 전쟁이 중국 시장 환경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한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 대한 보조금 차별 문제와 관련해 "곧 보조금 자체가 없어지고 국내외 기업이 공평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며 "무역 전쟁이 중국 시장을 더 개방하고, 중국 기업이 더 규칙에 부합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