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위안부 역사, 초등생이 꼭 배워야하나

입력 2018.07.25 03:15

獨, 14세 이상만 나치 수용소 견학… 참혹한 범죄 빼고 義人 활약 전해
우린 초등생 교재에 '性 노예' 표현, 심리적 충격도 감안해 보호해야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초등학생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피해를 가르치자고 하는 이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격언을 자주 인용한다. 맞는 말이다. 실패와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과거를 되새겨 그 교훈을 미래 세대에 전해야 한다. 일본은 한·일 합의를 근거로 "위안부 문제는 거론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지난 과오를 무작정 지우는 것은 그들의 후손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태도일 수 없다.

서울시가 이달 초부터 초등학교 5·6학년 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역사 교육도 이런 취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아이들에게 이런 것까지?"라는 걱정이 절로 든다. 서울시가 제작한 교재엔 '일본군위안부는 성 노예' '아침부터 밤까지…끊임없는 성폭력' 등의 표현이 들어 있다. 어린이에게 과도한 내용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서울시 측은 "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아이들이 성교육을 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범죄다. 이를 어떻게 성교육과 같은 차원에서 거론할 수 있다는 건지 의아했다. 일부는 "독일도 나치 범죄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독일이 홀로코스트 관련 교육의 대상 학생과 내용의 수위를 정할 때 학생들 나이를 먼저 고려한다는 사실은 주목하지 않는다.

나치 시절 바이마르 교외에 있던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는 5만6000명이 강제노동과 생체실험 등으로 사망한 곳으로 악명 높다. 독일은 학생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해 당시 만행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다만, 대상이 우리의 중3에 해당하는 만 14세 이상 학생들이다. 나치 독일이 세운 첫 강제수용소인 다하우 수용소는 고문실과 가스실, 화장터를 갖추고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다하우의 교육 부서가 만드는 안내 자료는 14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고 돼 있다. 그보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자료는 아예 만들지 않는다. 여행사들도 14세 미만에게는 견학 상품을 팔지 않거나 부모의 동행을 권한다.

독일의 14세 미만 아동들도 나치 시절 역사를 배운다. 다만 끔찍한 내용을 배제하는 '아우슈비츠 없는 아우슈비츠' 원칙이 적용된다. 이 원칙에 따라 1941년 이후 자행된 참혹한 유대인 절멸 범죄는 제외하고 그 이전 유대인 차별 등만 가르친다. 그마저도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지 않도록 나치에 맞서 유대인을 구출한 쉰들러 등 의인(義人)들의 활약을 함께 전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선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미명 아래 어린 학생들의 정서를 학대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전교조는 이른바 '4·16 교과서'로 계기수업을 한다. "야, 나 진짜 죽는 거야?" 등 사고 당시 학생들이 쓴 문자메시지를 읽게 하고 "내가 세월호에 있었다면 했을 말을 상상해보라"고 묻는다. 어른도 그 상황을 떠올리면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이 흐른다. 하물며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나이가 어릴수록 상황을 객관화해 보는 능력이 부족하고 그 상황에 몰입하기 때문에 심리적 충격을 크게 받는다"며 "때론 진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외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동 학대"라고 단언했다.

폭우로 동굴에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한 태국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을 며칠 전 외신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가 인터뷰했다. 동굴에 갇혀 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등을 물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태국 법무부는 지난 21일 "그런 질문은 아이들의 의식에 남아 있는 공포를 불러낼 수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게 상식이다. 태국 정부가 우리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봤다면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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