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뻥 뚫린 공백… 우린 모두 '홀'을 갖고 있다"

입력 2018.07.24 03:01

美 셜리 잭슨상 거머쥔 편혜영 "시상식 불참? 뜻밖이라 못갔죠"

편혜영(46) 장편소설 '홀' 영어판이 최근 미국의 셜리 잭슨상을 받았다. 미스터리 작가 셜리 잭슨(1916~1965)을 기리기 위해 2007년 제정된 이 문학상은 추리·스릴러·호러 등 장르문학을 대상으로 수상자를 선정해왔다. 편혜영은 동인문학상을 비롯해 주요 문학상을 받았고, 소설 '홀'은 미국·독일·폴란드에 이어 일본·인도네시아·베트남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홀'은 집 한 채를 무대로 삼은 소설이다. 식물인간 상태가 된 남자 주인공 '오기'와 그를 돌보는 장모 사이의 기묘한 관계를 통해 부조리한 상황이 전개된다.

소설가 편혜영은“미국에서 오는 11월 장편‘재와 빨강’이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설가 편혜영은“미국에서 오는 11월 장편‘재와 빨강’이 나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인원 기자
―한국에선 본격 문학으로 읽힌 '홀'이 미국에서 장르 문학으로 수용됐다. 셜리 잭슨과 편혜영 소설의 연관성은 무엇이라고 보나.

"셜리 잭슨은 노골적인 공포보다 일상에서의 불안과 낯선 세계의 두려움을 서스펜스 있게, 실감 나게 다뤘던 작가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공포가 아니라 실재적인 불안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장르소설 전통이 강하고 자국 소설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서 외국 작품에 배타적이리라 여겼는데, 뜻밖에 수상작으로 선정돼 몹시 기뻤다. 셜리 잭슨 상이 장르 문학에 수여하는 상이긴 하지만,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별은 무용하다고 생각해왔다. 그간에도 작품을 창작할 때 장르적 문법을 적극 활용해 왔으니까."

―현지에서 수상자 발표와 함께 열리는 시상식에 불참한 까닭은?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은 지난 5월에 들었다. 당연히 수상하지 못할 것으로 여겨 시상식에 참석할 생각도 안 했다.(웃음)"

―'홀'은 공포소설의 기법으로 실존의 부조리를 다룸으로써 삶을 낯설게 조명한 소설로 읽힌다. '홀'의 의미도 다중적으로 보인다.

"'홀'은 장모가 마당에 파고 있는 커다란 구멍을 가리킬 수도 있고, 주인공 '오기'가 바빌로니아 지도를 보고 생각하듯 인간의 실존적 공백일 수도 있으며, '오기'와 아내로 대변되는 인간관계의 여백으로 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중에 고독하게 남은 '오기'가 '홀로'라는 점에 착안해 '홀(혼자)'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해석해준 분도 계시다. 그런 해석도 인상적이었다."

―두 달 전 낸 장편 '죽은 자로 하여금'은 지방 도시의 종합병원을 무대로 삼아 한국 사회의 윤리 상실을 지적한 소설로 읽힌다.

"몰락한 도시의 이미지로 시작했다. 산업의 몰락으로 공동(空洞)화된 도시에 대해서는 미국 디트로이트에 관한 책을 찾아보며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언젠가 도시가 생물처럼 움직여 인간과 자본의 생태를 변화시키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최근 잇따른 조선 산업의 몰락으로 한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는 지역이 있어서 오래 품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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