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분단이란 수갑' 차고 광장의 자유를 꿈꾼 작가

입력 2018.07.24 03:01

소설가 최인훈 별세

"광장을 가지지 못한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고 했던 소설가 최인훈(84)이 23일 오전 10시 46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끝에 타계했다. 1960년 남북한을 제3의 시선으로 비판한 소설 '광장'을 발표해 냉전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려 했던 작가는, "문학 창작은 일종의 사고(思考) 실험"이라며 지식인의 고뇌를 탐구한 소설로 분단 시대를 조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할 예정이다.

최인훈은 2015년 국내외 연구자들과 대담한 자리에서 "6·25 때 원산에서 내려온 내 문학은 피란민의 문학"이라고 했다. "최인훈이라는 피란민 작가가 현대 한국이라는 원더랜드(이상한 나라)를 헤매고 다닌 셈"이라고 자신의 문학 세계를 요약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는 "최인훈은 한국 정치사와 문학을 하나로 엮은 작가이자, 우리 정치사를 자유민주주의를 향한 도정으로 본 지식인이었다"고 추모했다. 생전의 최인훈은 "현대사라는 수갑을 찬 한국의 작가는 정치와 역사를 빼고 문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최인훈
최인훈은 1980년대 말‘광장’을 되돌아본 산문을 써서“분단 문제와 관련해 한국 문학이 지닌 기능은 우리 민족이 통일된 공동체에 대해 지녀온 희망의 기억을 마취와 마멸로부터 지켜내는 일”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DB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상인 집안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방 후 북한 공산정권이 부친을 부르주아지로 지목해 탄압하자 1947년 가족이 원산으로 이주했다. 1950년 6·25가 터진 뒤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에 밀려 철수하자 12월 최인훈 가족은 해군함정 LST를 타고 월남했다. 최인훈은 목포고를 다닌 뒤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4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 자퇴하곤 군에 입대해 육군 통역·정훈장교를 지내며 틈틈이 소설 습작을 했다.

1959년 단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이 자유문학에 추천돼 등단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사상의 자유가 확대되자 소설 '광장'을 발표해 '4·19 문학의 상징'으로 우뚝 솟았다. '광장'은 몇 차례 출판사를 옮겼다가 1976년 문학과 지성사에 둥지를 튼 뒤 지금껏 204쇄 70여 만부를 찍는 동안 분단 시대 한국 젊은이의 필독서로 꼽혀왔다.

'광장'은 남한의 천박한 이기주의를 '광장이 없는 밀실'로, 북한의 획일적 전체주의를 '밀실이 없는 광장'에 비유해 모두 비판했다. 남한 청년 이명준이 분단 직후 월북했다가 6·25 때 북한군으로 내려와 포로가 되는데 종전 후 남북한 모두 혐오한 나머지 제3국 인도를 선택해 배를 타고 가던 중 바다에 투신한다는 비극이다. 작가는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며 밀실과 광장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꿈꿨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며 밀실과 광장을 잇는 '다양한 골목의 만남'을 이상(理想)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최인훈은 '광장' 외에도 지성(知性)에 바탕을 둔 다양한 실험 소설과 정교한 언어 예술을 보여줬다. '회색인'과 '서유기'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린 관념 소설이고, '가면고'는 환상적 사고실험(思考實驗)의 산물이다. 소설 '구운몽'과 '금오신화'는 고전을 패러디해 분단 시대의 상황을 현대적 괴담으로 묘사했다. 1970년대 이후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등 전통 설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잇달아 써내 한국 연극의 기폭제가 됐지만, 소설 창작은 중단했다.

그로부터 20년 만인 1994년 펴낸 '화두'는 20세기 한국사 체험을 성찰한 소설이다. 그는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자기 생애가 문득 소설처럼 바라보이는 시기가 있다"며 "소설 '화두'에 내 모든 게 들어 있다"고 했다. 작가는 2001년 서울예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뒤 2005년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을 낸 것을 끝으로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가 기른 제자로는 소설가 강영숙·심상대·하성란·신경숙·윤성희·신승철, 시인 채호기·이능표·이창기 등이 있다. 그는 팔순을 맞아 제자 50여 명이 마련한 모임에서 "문학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모범 답안이 없다"고 밝힌 뒤 다시 칩거했다.

유족으로 부인 원영희씨와 아들 윤구, 딸 윤경씨가 있다. 장례는 문학인장(장례위원장 김병익)으로 치러진다. 빈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25일 9시. (02)2072-2091


[최인훈 어록]


▲광장을 가지지 못한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밀실을 참지 못하는 개인은 개인이 아니다.

▲기억 속에 없는 것을 우리는 표현도 제작도 못한다. 창조란 회상의 능력일 뿐이다.

▲바쁜 사람은 역사를 읽을 틈이 없다. 역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다만 그가 나쁜 역사를 만들고 있을 때가 문제다.

▲사관(史觀)을 숭배하는 것은 우습다. 망원경을 숭배하는 것처럼.

▲사람은 같은 환상에서 시작해서 다른 현실로 삶을 맺는다. 이것이 슬프다. 환상의 실현의 차를 줄이자는 것, 그것이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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