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전력 수요가 급증해 정부 예상치를 넘어서자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가동을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비하느라 세워놓은 원전 2기의 재가동 일정을 앞당기고, 8월 중 점검에 들어가려던 2기의 정비 착수 시점을 여름 이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방법으로 최대 수요량의 약 6%에 해당하는 전력 500만kW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한다. 지난 3월 54.8%까지 낮췄던 원전 가동률을 한시적으로 탈원전 이전 수준인 80% 내외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탈원전 하겠다며 멀쩡한 원전을 조기 폐쇄하더니 전력이 모자랄 것 같자 다시 원전에 손을 벌리고 있다.

작년 말 8차 전력 수급 계획(2017~31년)에서 정부는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를 8750만kW로 예측했었다. 그러나 불볕더위가 계속되면서 정부 예측치를 넘어 여름 최대 전력 사용 기록을 갈아치우는 날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예비 전력 1000만kW, 예비율 11%'를 마지노선으로 설정했지만 지난주에 이미 예비 전력 900만kW대, 예비율 10%대로 내려갔다. 폭염 시즌의 초입인데 벌써 방어선이 무너졌다. 지난겨울 10여 차례나 공장을 멈추라는 급전(수요 감축) 지시가 발동돼 산업 현장에 소동을 빚은 사태가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름철 전력 수요는 피크에 달하는 8월 중순까지 계속 늘어난다. 이미 석탄 발전소는 61기 중 59기, LNG는 237기 중 230기를 풀가동하고 있다(20일 기준). 값비싸고 오염물질과 미세 먼지를 더 많이 내는 석탄·LNG 발전을 늘린 것이다. 탈원전 오기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석탄·LNG 발전을 늘릴 수도 없는 지경이 되자 할 수 없이 원전 추가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애초 정부의 전력 수요 예측 자체가 탈원전 목표를 위해 억지로 꿰어맞춘 인상이 역력했다. 8차 전력 수급 계획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대규모 전력 수요는 감안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무리한 예측을 근거로 신규 원전 4기를 백지화하고 멀쩡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는 등 탈원전으로 치닫더니 결국 전력 부족 우려를 낳고 있다. 15년 뒤까지의 장기 전략을 담았다는 전력 수급 계획이 불과 7개월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이 정권에서 탈원전은 성역이다. 지지율을 믿고 합리적 비판에도 귀를 막고 있다. 막무가내다. 결국 원전이 필요해지자 손을 벌리는 것을 보면서 아무래도 국가 에너지 수급에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은 걱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