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동차 벼랑 끝, 조선·철강 빈사 상태, 반도체 우위는 2년

조선일보
입력 2018.07.21 03:15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들이 경영 어려움에 시달리면서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 연 매출 1000억원 규모의 부품 협력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공기 흡입기를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직원을 줄여가며 근근이 버티지만 언제 쓰러질지 모를 협력사가 한두 곳이 아니라고 한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50개 자동차 부품업체 중에서도 23개가 1분기에 적자를 냈다. IMF 외환 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한국 경제의 주력인 자동차 산업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판매 부진에 빠져 있다. 내수가 침체됐고 수출도 부진하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5개 완성차 회사의 생산량은 2011년 465만대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411만대까지 하락했다. 작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9000만대를 돌파하는 등 호황이었는데도 한국차는 7%나 줄어들었다. 수출은 5년 연속 감소했고, 내수 시장은 수입차에 잠식당하고 있다. 과거 10%에 달하던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올 1분기 3% 수준으로 전락했다. 세금·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현대차가 이 정도면 협력사들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위기 상황이다.

환율 하락과 사드 보복 등도 있었지만 근본 원인은 결국 경쟁력 약화 때문일 수밖에 없다. 전기차 같은 새 패러다임에 적응이 늦었고 SUV로 옮겨간 글로벌 트렌드에서 뒤졌다. 미국 시장에선 일본차에, 중국 시장에선 중국차에 밀렸다. 경영진은 혁신에 실패했고, 노조는 무한 이기주의 투쟁으로 경쟁력을 갉아먹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고비용·저효율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현대차 울산 공장에서 차 1대를 만들 때 드는 노동시간(26.8시간)은 미국 앨라배마 공장(14.7시간)의 두 배에 달한다. 현대차의 13개 해외 공장 중 꼴찌 수준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 노동자는 중국 충칭 공장보다 9배 많은 월급을 받는데 생산성은 70% 수준에 불과하다. 품질도 오히려 충칭 공장이 낫다고 한다. 이런 기업이 어떻게 살아남나. 구조적 위기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 안 그래도 힘든 부품·협력업체들을 한계상황으로 밀어넣고 있다. 탈원전을 한다며 산업용 심야 전기료도 올린다고 한다. 전체 산업용 전기의 6.4%를 소비하는 자동차 산업의 비용 부담이 커져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트럼프 정부가 오는 9월 이전에 25%의 수입차 관세 부과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현실화되면 생산량의 20%를 미국에 수출하는 우리의 자동차 산업이 치명타를 입고 산업 생태계가 초토화될 수 있다. 일자리가 13만개 위협받고 11조원어치 부가가치가 사라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충격은 자동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동차는 제조업 생산의 14%, 수출의 11%를 차지하고 177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력 산업이다. 자동차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다.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다. 반도체는 중국의 본격 생산이 2년 남았다. 휴대폰처럼 반도체도 중국 시장이 사라지고 세계에서 중국 반도체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는 것은 시간의 문제다. 자동차, 반도체와 함께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던 조선산업은 이미 빈사 상태에 있고, 철강은 세계 무역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차세대 주력 산업이 될 인공지능·자율주행차·핀테크 등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몇 년만 지나면 한국 경제는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노조는 여전히 투쟁이다. 평균 연봉이 1억원에 육박하는 현대차 노조는 임금을 더 올려달라며 올해도 세 차례 파업을 벌였다. 일본 도요타차가 56년간 무파업 전통을 이어갈 때 현대차는 31년 동안 총 430회 파업을 벌였다. 국내 완성차 업계 노동자의 평균 연봉은 9072만원으로, 일본 도요타(8391만원)나 독일 폴크스바겐(8303만원)보다 많다. 그런데도 더 달라며 파업 카드를 휘둘러 경쟁력 약화를 자초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 노조도 파업에 들어갔거나 예고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온 주축 제조 산업이 추락해 벼랑 끝에 몰렸는데 경영진도, 정부도, 노조도 한가하게만 느껴진다. 노·사·정이 함께 심각한 위기 의식을 갖고 제조업을 살릴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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